"6.25전쟁 잊어선 안 돼…알려야"
6·25참전유공자회 미서부지회에서 활동하는 임원진이 지난 18일 본지를 방문했다. 하순직 공군부회장, 최병길 감사, 최창준 상임고문, 이재학 회장, 권영구 수석부회장, 엄진섭 해군부회장, 최만규 육군동지회 회장(왼쪽부터· 사진 위) 참전용사들이 LA한인타운 지회사무실에서 지난 현충일에 이사회를 갖기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가운데). 아시회를 마치고 단체촬영한 모습. 김문호 기자·육군동지회 제공
'망백' 참전영웅들이 기념식 하는 이유
"요즘 젊은이들 잘 몰라서 안타까워"
월 42만원 참전수당서 갹출해서 행사
내일 LA 새한교회서 제74주년 기념식
"한인회 등 주요 단체들도 관심 갖고 함께 했으면"
“지금이야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전쟁의 참혹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절대 몰라.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안됩니다. 지금 젊은이들 중엔 6·25전쟁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라도 기념행사를 해서 알리려는 거예요. 알아야 (전쟁을)피할 수 있고 평화도 지킬 수 있어요.”
망백(望百)의 평균나이인 6·25참전유공자회 멤버들이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을 앞두고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마련,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또는 20대 초반 나이에 징집돼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가영웅’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주인공이 아닌 행사의 주최자로 기꺼이 손님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인류 초강대국 미국에 살면서 웬 전쟁 걱정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전쟁은 방심하면 언제든 터질 수 있고, 그 참상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결국은 같은 모습일 것이기에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게 참전용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오는 22일 오전 10시30분부터 LA새한교회에서 ‘제74주년 6·25한국전쟁 기념식’을 준비 중인 6·25참전유공자회 미서부지회 소속 6명의 영웅들이 남가주 육군동지회 최만규 회장과 함께 지난 18일 미주조선일보LA를 찾았다. 행사는 6·25기념사업회, 육군동지회, 육군협회, 월남전참전자회, 헌병전우회, 카투사전우회, 국가원로회의, 3.1여성동지회 등이 공동참여한다.
이들 영웅들은 기자와 1시간여 대담하며 갑작스럽게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렸던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때로는 커뮤니티가 꼭 들어야 할 쓴소리도 거침없이 털어놨다.
6.25참전유공자회의 이재학 회장, 엄진섭 해군부회장, 권영구 수석부회장, 하순직 공군부회장, 최병길 감사, 최창준 상임고문의 70여년 전 참화의 기억은 조금씩 달랐지만 북한군과 대치하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아픔만큼은 너무도 생생했다.
전쟁이 막 터졌을 때 서울의 한 중학교(당시 6년제)에 재학 중이던 이재학 회장은 지금의 고교 1학년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이후 전시상황이 호전됐을 때 다시 복학했고, 결국은 단기 사관학교 과정을 통해 초급장교로도 전선을 누빈 특이한 이력을 밝혔다. “‘돌격 앞으로!’를 외쳤던 육군소위 전사자들이 정말 많았어요. 부하들을 앞에서 이끌어야 했으니 총알을 맞아도 제일 먼저 맞을 수밖에요. 그런 걸 보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정말 대단한 행운인 거죠.”
엄진섭 부회장은 대구 계성고 3학년 때 영문도 모르고 트럭에 실려 갔다가 학도병이 된 케이스. “마냥 트럭에 실려 갔으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전투를 해야 했어요. 더 참담했던 것은 10명의 소대원에게 지급된 총은 고작 3자루 뿐이었어요. 그러니 목숨 걸고 북한군의 총을 빼앗아야 살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항이었죠.” 엄 부회장은 이후 해군에 입대했다가 박격포탄에 큰 부상을 입고 의병제대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권영구 수석부회장은 전쟁이 나던 그해 9월 16살 나이로 학도병 아닌 육군에 징집돼 한국전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철원. 금화, 평강으로 이어진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하순직 부회장은 공군에 입대해 전투기를 타고 포병에 적군의 좌표를 알려 포격하도록 하는 일을 했다. “워낙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제대로 훈련도 못 마친 채 ‘B-17’ 폭격기를 타고 참전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 부회장은 전쟁엔 사병으로 참가했다가 휴전 후 장교교육을 받고 대위로 예편했다.
본지를 방문한 6인의 영웅 중에서도 1925년 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최병길 감사는 21살에 징집돼 일본 요코하마에서 훈련 후 카투사 통신병으로 무려 12년을 근무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현역 언론인으로 한인 커뮤니티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최창준 고문은 개성 출신으로 1950년 11월 전시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해 3개월 훈련 후 소위로 임관했다. 전투병과는 아니었지만 공병 보급장교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고 회상했다.
6·25 참전 국가유공자들은 한국정부에서 지원하는 참전수당으로 월 42만원씩을 받는다. 보통 6개월 단위로 은행계좌나 우편(체크)으로 받는데, 원달러 환율이 높아 실제 지급받는 돈은 300여 달러 정도. 참전용사들은 그런 돈을 조금씩 모아서 그동안 각종 전쟁 기념식을 해왔고 이번 6·25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웅들은 그런 수당을 받는 것만으로도 조국에 ‘감사하다’는 표정들이다. 또, 지난해에는 한국정부에서 참전용사들을 위해 특별히 단체복을 보내준 것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위아래 유니폼에 넥타이까지 백에 담아 집으로 보내왔는데, 그 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쓴 참전영웅에 대한 감사와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적힌 편지가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는 게 이들의 진심이다.
당연히 이번 74주년 행사에도 자랑스런 참전용사 단체복을 입을 것이라고 밝힌 이재학 회장은 “지금 나이에 뭐 대단한 금전적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며 “다만, 참전용사에 대한 기억과 존경, 그리고 이런 행사들을 통해 전쟁에 대한 교훈을 상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육군동지회 최만규 회장은 행사와 관련해 “캘리포니아 미 육군 보병사단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40사단이 전체 해외파병 후 1년 만에 복귀한 시점에서 이번 기념행사를 갖게 됐다. 40사단 대표로 참모장인 후안 모라 대령이 참석해 기념사를 한다. 또, 미 육사 LA지회 멤버의 배우자인 마를린 크레이기 여사가 참석해 전쟁을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크레이기 여사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으며 남편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시아버지는 미군 소장으로 6·25 휴전협정 당시 UN감시단으로 참여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최 회장은 “6·25 참전용사들은 하루가 다르다. 영웅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언제나 ‘이번 행사가 그분들께는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현재, LA지회에 80명의 참전용사가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많아 행사에는 30명 정도만 참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행사에 더 많은 차세대들과 커뮤니티의 여러 한인 단체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석해 영웅들을 기억하고 또 존경을 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김문호 기자 la@chosun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