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하향 평준화를 우려한다
병실에 수술을 마친 환자 넷이 있었다. 한동안 끙끙 앓던 환자들은 ‘가스 배출’이라는 공통 희망 사항이 생겼다. 환자와 보호자가 묻고 대답하더니, 병상 너머 옆 환자에게 가스 배출 여부를 묻는다. 드디어 시원한 소리가 터졌다. 온 병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미안해하던 당사자와 보호자가 멋쩍게 웃었고, 온 병실이 함께 기뻐하였다.
뒤이어 가스가 분출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서로서로 가스 분출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병실은 가스 분출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급기야 이상한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병실 모든 사람이 소리를 냈고 소리가 없으면 가스 분출 안부를 물었다. 급기야는 보호자들도 소리를 내며 깔깔대고 웃었다. 수술 병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었다.
병실 가스 분출 경험은 빙그레 미소지을 수 있는 경험이고, 나름 즐거운 추억이긴 하지만 다시 반복하기는 어렵다. 그분들을 다시 만난다고 해고 그 날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어도 재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경험이다. 되돌아보면 낯뜨거운 경험이요 하향 평준화된 작은 사회의 단면이다.
요즘 한국 뉴스를 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맘이 불편하다. 특히 정치권 소식이 영 마뜩잖다. 특히 대선후보들의 행보나 그들의 메시지가 시답잖게 느껴진다. 후보들의 면면을 알면 알수록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최근에는 후보들과 후보들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볼썽사납다.
여당의 대선후보는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이미 공개되고 자신이 인정한 가족 간 갈등만 봐도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도덕성과 윤리 수준이다. 가족이기에 갈등하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렇다고 해도 모두 극단적으로 다투고 욕설을 주고받지 않는다. 이 정도의 사실이 드러나면 뼈대 있는 마을이라면 마을 이장(里長)도 하차한다. 적어도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 마을의 이장은 못했을 것이다.
후보가 인정하지 않는 주변 문제들도 석연치 않다. 여배우 스캔들, 변호사비 문제나 대장동 개발 비리 등등은 아무리 좋게 봐도 수상하고 미심쩍다. 이런 도덕성과 이런 수준의 논란거리를 가진 사람이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을 거쳐 대선후보로 나서서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이 대대장직에라도 오를 수 있었을까? 이 정도의 문제가 드러나고 구설에 오르면 출마는커녕 있던 관직에서도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제일 야당의 대선후보도 마뜩잖은 것은 마찬가지다. 아내의 이력서가 잘못된 것이 너무나 확연하건만 해명이나 사과에 미흡했다. 물론 배우자의 일이니 후보의 문제로 등치(等値)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했다고 더 적극적이고 진솔하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도자로 나선 이들의 미흡한 도덕성에 뒷맛이 씁쓸하다. 그들의 도덕성의 쇠락은 한국사회의 도덕성 하향 평준화 결과다. 이런 도덕성으로 감히 출마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성경이 보여주는 이스라엘 역사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거대한 외부 세력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범죄와 타락 때문이었다. 조국과 민족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무서운 죄악 평준화가 큰 화를 초래할 것 같아 아프고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