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인생 교과서
아버님은 2003년 10월 17일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형제의 차남인데 맏상주 노릇을 했다. 당시 형이 시카고 지역에서 유학 중이었다. 금요일에 돌아가셔서 4일장을 했다. 3일장은 주일에 출상해야 했기에 부득불 4일장을 했다. 늦은 주일 밤 텅 빈 장례식장에서 물끄러미 아버님 영정을 보다가 무릎을 쳤다. 기도할 때마다 주문처럼 반복하신 아버님의 기도가 생각났다.
늘 반복하신 아버님 기도가 응답된 것이었고, 그 응답 때문에 맏아들이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님은 아들들이 세계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셨고, 이를 위해 유학의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셨다. 아버님 기도대로 두 아들이 국비 유학을 했다. 아버님 기도대로 둘째와 셋째가 목사가 되었다. 아버님 기도는 우리들의 생각을 뛰어 넘어 크고 광대했다.
아버님은 늦둥이 막내로 어리광 피우던 10대 초에 부모님을 잃었다. 고아가 되어 사촌 형님 집안 일을 도우며 성장하셨다. 그러니 학교는 엄두도 못 냈다. 홀로 한자를 조금 익혔고, 국어공부를 하셨고, 주판을 배우셨다. 그래도 탁월한 기억력, 남다른 근면 성실과 철저한 신앙으로 알차게 사셨다.
신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아버님은 한동안 고향 교회 강단을 지키셨다. 목사님, 전도사님을 모실 수 없는 어려운 시골 교회를 지키셨다. 당시 아버님은 고향 교회 종치기, 청소부 그리고 설교자셨다. 주석도 강해집도 없이 농사일 사이에 준비하신 아버님 설교는 흥미진진했다. 아버님 설교를 듣고 우리들이 자랐고, 마을 전도가 이루어졌고, 일군들이 성장했다. 그렇게 예수를 믿은 우리 친구들은 지금 목사, 장로, 권사로 하나님을 섬긴다. 목사가 되고서 생각하니 아버님의 설교가 경이롭다.
아버님의 설교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 아버님 기도였다. 가정 예배나 식구가 모여 식사할 때, 중요한 가정사가 있을 때 아버님은 기도하셨다. 아버님 기도는 통상 길었다. 크고 넓었던 아버님의 기도 내용은 큰 도전이었다. 아버님 기도 개념과 기도 용어를 아직도 흉내 내기 어렵다.
살아오면서 아버님의 넓은 세계관에 감탄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아버님의 비밀을 찾았다. 아버님은 성경으로 삶의 지평을 넓히신 것이다. 성경은 아버님의 인문학 교과서였다. 아버님은 성경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셨다. 성경에서 배운 아버님 인생론은 오형제 삶에 살아 있다.
군종목사로 섬긴 첫 군인교회에 지역 주민 서상순 권사님이 출석하셨다. 어렵게 키운 아들이 고시공부 중에 정신병자가 되자 담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다. 힘든 생활 중에 예수를 믿고 성경으로 한글을 깨치신 분이다. 온 동네와 부대가 아는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분이셨다.
그런데 왜소하고 수줍음 많은 권사님은 대표기도만 하시면 쩌렁쩌렁한 기도로 예배당을 뒤집어 놓으셨다. 새벽마다 나라와 부대 그리고 세계 선교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셨다. 어느 주일 아내를 찾아 교회왔던 한 간부는 담뱃집 할머니의 강력한 기도에 감복해 교회 출석을 시작했다. 권사님은 삶도 아름다웠다. 나눔의 삶을 사셨다. 가장 가난하신 분이 불우 전우 돕기 헌금에 언제나 앞장 서셨다.
권사님은 평생 한권의 책을 읽으셨다. 그 책이 성경이다. 권사님은 성경을 읽으시고 젊은이들과 대화가 통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셨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법도 가르치지만 인생과 세계를 가르치는 인생 교과서다. 서상순 권사님과 아버님에게는 성경은 인생 교과서였고, 힘찬 삶을 가르치는 행복 교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