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수 목사의 종교칼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성경 이야기(121)
사사기를 시작하며(2)
유대인들은 사사기의 제목을 ‘쇼페팀’이라 칭한다. 이는 ‘지도자, 재판관’을 뜻하는 ‘쇼페트’의 복수형으로 사사기에서 활동한 ‘사사들’을 의미한다. 사사들은 평화 시에는 정치, 사회,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했지만, 전쟁 시에는 군대장관으로 이스라엘을 적으로부터 구원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왕정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35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약 20여년을 거쳐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비록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정복해야 할 땅까지 포함하여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고 110세에 그의 생을 마감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그들이 기업으로 분배 받은 땅을 정복해야 했지만 곧 문제에 봉착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여 나머지 땅을 정복할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유능한 군대장관이었지만 그를 이을 후계자는 세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후 이스라엘은 지도자 없이 12지파로 나뉘어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힘은 분산되었고, 각 지파의 힘만으로는 그 땅의 주민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지파가 그들이 분배 받은 땅을 어떻게 정복하였으며, 또 정복한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사기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제일 먼저 유다 지파의 요구로 시므온 지파가 유다와 연합하여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 땅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시므온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에 속해 있는 성읍들이었기에 그들은 연합하여 전쟁에 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산지와 남방(광야)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워 승리했으며, 험한 산지의 성읍 헤브론도 점령하였다. 그들은 산지의 주민들은 쫓아냈으나 골짜기의 철병거가 있는 강력한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하였다.
베냐민 자손들도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 여러 성읍들을 점령하였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던 여부스 족속은 쫓아내지 못하였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락과 같은 성읍이어서 이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다윗 왕 때에 가서야 비로소 점령했다. 이들 지파 뿐 아니라 므낫세, 에브라임, 아셀, 납달리, 단 자손들도 그들의 기업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그들이 이미 점령한 여러 성읍에서도 그곳 주민들을 다 쫓아낼 힘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곳 주민들과 타협하고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삿2:1-2)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의 주민들을 쫓아 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언약을 맺고 함께 동거하며 살아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 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2: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로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출19:5-6). 이스라엘은 그들이 사는 곳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삶의 본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언대로 하나님만을 섬기지도 본을 보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땅의 신들을 섬기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의 주민들은 가시와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든다. 사사기는 이러한 이스라엘이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그들이 회개하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시는 일을 무려 12번이나 반복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마통독학교 (HaMa Bible Academ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