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 미국, 중국 견제정책의 딜레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 그대로 ‘미국의 핵심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은 쓸데없는 곳에 돈과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패권경쟁의 무대는 물론 경제이고, 과학기술이 승부를 결정한다. 의회가 추진하는 ‘혁신경쟁법안(The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USICA)’은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결정체다. 미국 특유의 혁신을 통해 반도체 및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계획이다. 7개의 세부 법안은 내년부터 5년간 2500억달러의 재정지원계획과 분야별로 목표달성을 위한 프로그램, 정책, 제도, 조치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전략적경쟁법안(Strategic Competition Act)’과 ‘중국도전대응법안(Meeting the China Challenge Act)’은 아예 법안의 제목에 ‘중국’이 명시돼 있고 내용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동맹국과 더불어 다자간 수출 통제조치를 도입하고, 주요 산업 부문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거점을 보호하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 영역은 아예 국무부가 직접 나서 동맹국들과 함께 관련 기술 유출을 통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제표준 제정 등의 전략을 추진하도록 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 공산권에 대한 수출통제 시스템이었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부활인 셈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법안의 효과는 중국의 영향력 감소를 위해 지난 30년간 형성돼 온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 견제에 핵심적인 요소라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강화는 당연한 일이고 이는 태평양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미국의 딜레마도 커진다. 새로운 방향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새로운 질서에서 중국과 어디까지 협력하고 어디부터 경쟁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 미국과 중국을 경쟁 관계로 보기만 하는 것은 단순한 시각이다. 2020년 애플의 200대 공급업체 가운데 51곳이 중국 기업이었고 미국은 32곳이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기업이나 동맹국들이 미국의 요구대로 중국 견제를 위한 더 많은 역할을 할 경우,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도 아직은 모호하다. 연방정부가 직접 주도적으로 전략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혁신 경쟁 법안’ 역시 중국식 산업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의 개입과 보조금으로 국제무역 규범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법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만 봐도 지지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계는 기술혁신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며 환영하고 있지만, 학계와 많은 연구기관에서는 어설픈 산업정책과 불완전한 정부의 개입으로는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를 갖춘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내 R&D 역량은 빠르게 글로벌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기업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다. 제재의 결과 2019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의 글로벌 점유율은 18%에서 4%로 급감했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은 삼성 19%, 샤오미 17%, 애플 14%, 오포 10%, 비보 10%였다.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중국 3대 기업의 점유율 합계는 37%에 달했다. 미국은 중국과 두더지 잡기를 한 셈이다.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자립을 강조한다. 미국은 2500억달러를 준비하고 있지만, 중국은 1조4000억달러를 쓸 계획이다. 바이든 취임 이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미·중갈등의 진로와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긴 싸움이 될 것이다. 미·중갈등 속에서도 올 상반기에만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수입 2296억달러, 수출 711억달러로 무역적자 규모가 1585억달러였다. 미국 전체 무역적자의 3분의 1이다.
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