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이란?
지난 2020년이 청교도 이주 400주년이었다. 400년 전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넜던 청교도들은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영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낯설고 물설었던 새 땅에 희망의 씨를 심었던 그들은 순수한 신앙을 추구했다. 그들은 순수한 신앙을 위해 교회와 학교를 세웠다.
눈물겨운 그들의 기도와 열정에 하나님 은혜가 임했다. 생존(Survive)을 걱정하던 그들은 번영(Thrive)을 누렸고, 믿음의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토대로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만들었고 이 정신 위에 미국이 세워졌다.
이렇게 세워진 미국 역사도 허물과 죄악으로 얼룩진 적이 있다. 죄악도, 실수도, 분쟁도, 상처도 있었다. 이런 문제와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청교도 후예는 엎드렸다. 엎드려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은 부흥이었고 부흥을 통해 미국은 일어났다. 제1차 대각성운동부터 1995년 미국 캠퍼스 부흥운동까지 미국 부흥운동은 청교도 신앙 회복을 낳았다.
미국을 통시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미국의 위기를 지적한다. 미국 상하원이 제정하는 법안이나 행정부가 집행하는 정책이 비성경적이다. 한마디로 반신앙적이다. 청교도 정신과 너무 동떨어진 미국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존 맥아더나 존 파이퍼 같은 미국의 지도자들은 청교도 신앙 회복을 주장하고 있고, 한인 교계에서도 청교도 신앙 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 청교도 신앙 회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첫째로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은 미국 살리기 운동이다. 미국이 미국다워지는 것이 청교도 정신의 회복이다. 청교도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미국을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문제는 청교도 정신 상실에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나아가 교회의 문제는 청교도 정신 상실에 있다.
둘째로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은 도덕심 회복 운동이다. 청교도를 퓨리탄(Puritan)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순수하기를 사모했다. 시행착오, 실수, 그리고 허물이 있었지만 청교도는 도덕적 순결을 지향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때마다 도덕적 회복 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셋째로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은 예배 회복 운동이다. 청교도들은 예배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그들이 목적으로 했던 신대륙은 지금과 같은 기회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위험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국을 떠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항해를 시작할 때 그들은 자유롭고 온전한 예배를 사모했다. 그들의 예배를 배우는 것이 청교도 신앙 회복이다.
넷째로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은 기도 회복 운동이다. 청교도들은 수많은 위기를 기도로 극복했다. 청교도들이 미국을 개척한 역사의 뒤안길에는 피눈물 섞인 기도가 있다. 사망의 그늘이 드리워진 새로운 땅에서 희망을 일구며 흘린 기도의 눈물이 미국이 누린 축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교도 신앙 회복 운동을 말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청교도 정신을 잃고 표류하는 미국이 회복되지 못하면 우리 자녀들의 삶은 황폐하게 무너질 것이다. 오늘의 풍요로움과 편리함과 편안함에 젖어 다음 세대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침몰하던 타이타닉에 탔던 사람들이 비싼 음식을 자랑하고 좋은 음악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이었던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