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아버님 행복 배우기!
80년대 초 어느 겨울. 부산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모처럼 여유롭게 며칠간 집에서 뒹굴다가 아버님 일을 돕고 싶어 일터로 나갔다. 평생 9할을 어깨와 등으로 사신 아버님의 일은 허드렛일이었다. 한나절 아버님을 도우니 겨울인데도 땀이 흠뻑 젖었다. 아버님을 도왔다는 뿌듯함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도우러 가겠다며 나서는데 아버님이 불러 세우셨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아들이 아버지 일을 도와주니 든든하고 고맙네. 오전에 고마웠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일 계속 도와주는 것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 일을 계속 도와주는 것은 이만하고 공부를 하건, 운동을 하건 아들이 해야 할 일을 하면 좋겠네.” 일하러 오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예상 밖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별 도움이 안 되었다는 말씀이신지 상황판단이 안 되었다.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님이 빈둥거리는 대학생 아들의 도움을 거부하시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황스러워 마땅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데, 아버님께서 좀 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생생한 아버님 말씀을 거칠게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아버지를 도우는 것은 한나절이면 족하고 고맙다! 아버지 일은 아버지의 일이다. 스스로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버지를 도와주는 일이다. 아들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버지 행복이다!”
그 다음날 새벽부터 두 동생을 데리고 시립도서관에 갔다. 매일 도시락 6개를 들고 도서관에 가서 문을 여는 아침 7시부터 문 닫는 밤 10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이렇게 보낸 60여 일의 겨울방학이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때 열심히 읽었던 "영어의 왕도(Royal Road to English)"나 “영어성경”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버지의 행복”이라던 아버님 말씀은 지금도 머리와 가슴에 살아 있다.
아버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 수년간 ‘약한 뇌졸중(Minor Stroke)’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기력이 쇠하여 편찮으신 아버님을 잠시 모시고 살았다. 약한 아버님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아버님과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도 약하신 아버님께 운동하시라고 권했던 대화였다. 하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아버님 모습은 ‘아들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가 고생한다!’던 아버지다. ‘아들의 행복이 아버지 행복이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살아 있는 유언이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코로나로 쉬고 있다. 녀석은 공부도 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하지만 일을 쉬고 있는 녀석의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 통화할 때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아들에게 40여년 전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아들의 행복이 아빠의 행복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아버님 말씀과 마음을 아버님 손자에게 전하고 나니 마치 큰 효도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님과 같은 마음으로 아들의 행복을 응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버님의 그 마음을 배우고 싶다. 솔직히 당신의 인생의 재미나 편안함보다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시며 누리신 아버님의 고상한(?) 행복을 아직도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