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중국몽에 취한 한반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은 더 이상 노장(老莊)·공맹(孔孟)의 숨결을 품은 땅이 아니다. 모택동은 중국을 역사와 단절된 나라로 만들었다. 홍위병들은 노자 강경대(講經台)와 공자의 사당을 파손했고, 숱한 역사적 기록물과 시문(詩文)들을 불살랐다. 문화혁명의 반달리즘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탈레반의 바미안석불 파괴에 못지않은 반(反)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45년 전에 죽은 모택동이 아직도 천안문 광장 붉은 벽 위에서 인신(人神)처럼 천하인민을 굽어보고 있다. 민주화 투쟁의 핏빛 원혼이 떠도는 그곳에서….
동북공정에 몰두하는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는 물론 김치와 한복과 아리랑마저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겨대고 있다. 저들이 역사에서 이어받은 것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 인접국들은 미개한 오랑캐’라는 화이(華夷)사상 밖에 없는 듯하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다가 망했는데, 중국은 지금 ‘아시아 공동운명체’를 부르짖는다. 거기에 맞장구치듯 ‘한국과 중국은 운명공동체’라는 다짐까지 나온다. 만일 ‘한국과 미국은 운명공동체’라고 말한다면 ‘친미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억수로 퍼붓지 않을까?
오랜 옛적부터 다른 민족의 삶터였던 신장위구르·티베트·연변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있는 중국은 사실상 21세기의 유일한 식민제국이다. 수니파 무슬림의 땅 신장위구르는 아프가니스탄과 맞닿은 접경지역인데, 극단주의 수니파인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중국은 위험을 느꼈는지 재빨리 탈레반에게 친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시아 유교문명과 중동 이슬람문명의 결합을 미래의 새로운 위협으로 내다본 새뮤얼 헌팅턴의 우려가 섬뜩하게 떠오른다.
『경국대전』 예전(禮典)에 명나라에 대한 의전절차를 규정해둔 조선은 해마다 정초와 동지에 중국황제에게 사신을 보내고, 왕세자의 책봉을 아뢰는 주청사(奏請使)도 파견했다. 비겁한 사대(事大)주의인가? 아니다. 당시의 국제상황에서 가장 유효적절한 안보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허리를 굽히기도 했지만, 생존을 위협받으면 중국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기도 했다. 조선 말기에 청나라 원세개의 12년 분탕질로 자주권을 빼앗기고 결국 일제의 식민통치를 맞았지만.
조선의 사대는 중국의 눈치만 살피는 종중(從中)이라기보다 중국을 안보의 방패로 삼는 용중(用中)에 가까웠다. 대륙의 끝자락 비좁은 반도에서 고유한 언어, 창의적 문자, 독창적 문화를 지니고 겨레 혼을 연면히 이어온 우리 역사는 인류문화사와 국제정치학의 일반 원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적 같은 생명력의 역사였다. 중국은 ‘주체의 나라’ 북한을 사실상의 속국으로 삼아 종주국 노릇을 하고 있지만 ‘굴복을 모르는 대(大)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북한은 도무지 저항할 줄 모른다. 중국몽(中國夢)에 취했는지, 중국몽에 짓눌렸는지…. 아무리 봐도 고구려의 후손답지 않다.
어디 북한만인가? 이른바 ‘사드3불 합의’는 우리의 안보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드 문제를 미·중의 패권경쟁 구도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사드가 우리의 자유에도 중요한 방어체계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옥죄려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에 벌벌 떨면서 사드 반대를 외치는 입들이 있지만, 그 입들은 지난 시대에 경제개발을 비난하며 ‘경제보다 자유가 더 소중한 가치’라고 부르짖던 입이다. 그 입으로 지금은 ‘자유보다 경제가 더 소중하다’고 외쳐대는 셈이다. 그 시절의 ‘자유’가 정권투쟁의 구실이었는지, 지금의 ‘경제’가 중국몽의 핑계인지 아리송하다.
자주(自主)를 외치면서도 중국을 높이 떠받들며 스스로 변방을 자처하는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공부가 모자란 탓인지, 조선의 국왕이 중국황제를 찾아가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조선은 작은 나라’라며 머리를 조아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용중의 길을 모색하느라 고뇌했을지언정 얼빠진 종중의 그늘로 움츠러들지 않으려 애썼던 옛 어른들, 중국몽에 취해 우리의 꿈을 스스로 날려버리는 지금 한반도의 후손들…. 누가 정녕 ‘사대’라는 비판 앞에 서야 하는가?
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