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인문학으로 배우는 행복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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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인문학으로 배우는 행복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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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화두다. 언론에도 행복은 심심찮게 등장하고 서점가의 신간 코너에도 행복’ 관련 서적은 늘 나타난다. 사람들이 나누는 모든 이야기에 행복이 관련되어 있다. 현대인의 삶에 행복은 무소부재(omnipresent)다. 행복이 일상용어가 되어 버렸다. 어느 찻집 메뉴에 행복차가 있다. 행복은 현대 사회에서 약방의 감초다. 왜 이럴까?


그것은 행복이 인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행복은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여 에덴동산의 풍요를 누리는 풍성한 삶이요, 철학적으로 말하면 행복은 최상의 깨달음이요. 인간학으로 말하면 행복은 인간됨의 실현이요, 경제적으로 말하면 현대인은 행복을 누릴 여유를 가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단언컨대 행복한 원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정 행복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현대인이 행복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행복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우선 ‘행복 나무’를 모른다. 행복 나무를 모르니 불행의 나무 밑에서 행복의 열매를 찾고 있다. 나아가 ‘행복 열매’를 모른다. 그래서 행복 나무 밑에서도 정작 행복 열매를 줍지 못한다.


행복의 본질을 모른 채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살수록 불행해진다. 목적지와 방향을 모른 채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위험한 것처럼 행복을 모른 채 행복에 골몰하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다.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사는 것 혹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현대인이 행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행복 불감증이다.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병이 행복 불감증이다.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말할 만한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외적 조건들이 상당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행복감이 없다. 최근 여러 조사는 행복감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 있다는 것을 밝혀 주어서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런 사회는 불행의 기운을 유통시키는 역기능적인 문화를 만든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 복지 시설과 제도, 사회 안전망, 의식주의 수준은 대단하다. 과거 왕들도 먹지 못한 음식을 먹고, 과거 권세가들도 누리지 못한 편리한 삶을 살면서 만성 불행감에 시달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인은 행복감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문학을 권한다. 긴 세월을 통해 검증된 문학, 철학, 역사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인생지평을 넓히면 삶의 본질을 보게 한다. 인문학은 인생과 행복을 보는 눈을 열어 준다. 인문학은 자신의 행복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도 보게 한다. 이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성공적인 기업가가 많고 훌륭한 작가나 지도자가 많다. 


몇 번 언급했지만 긴 역사를 통해 검증된 최고의 인문학 교과서는 성경이다. 그런데 왜 성경을 읽어도 행복하지 못할까? 성경을 지식으로 습득하기 때문이다. 성경뿐 아니라 모든 인문학을 지식 습득을 위해 공부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 인문학은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성경의 그 가르침대로 구원받은 풍성한 삶을 위해 성경을 읽자! 생명을 위해 성경을 읽으면 풍성한(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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