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마음의 정원을 가꾸자
박성근 목사(남가주 새누리 침례교회 담임)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 (Carl Gustav Jung)이 한번은 인디언 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주름살이 별로 없는 인디언들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특별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뜨거운 햇빛을 받아서 그런가?” 속으로 여러 가지를 상상하며 서 있을 때 추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읽기나 한 듯 추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백인이 인디언보다 얼굴에 주름살이 더 많은 이유는 백인들은 머리로 생각하고 인디언들은 가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칼 융이 서구 문화를 깊이 반성했다고 한다. 머리를 굴리며 계산만 했지, 가슴으로 살지 못한 메마른 지성을 반성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지성이 필요하다. 지적인 판단이나 체계적인 논리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막연한 신비주의나 황당한 미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변증학(Apologetics)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기도 한다. 기독교 교리를 체계 있게 설명하고, 이단 사설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 품고 안아주는 가슴이 있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메마른 율법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회당에 들어가셨다가 열여덟 해 동안 귀신이 들려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쳐주신 일이 있다(눅 13:10-16). 이 장면을 목격한 회당장이 분노했다.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때 주님께서 “18년간 사탄에게 메여 고통 속에 살아왔던 아브라함의 딸을 푸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라고 반문하셨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요, 율법의 조항보다 더 귀한 것이 이웃의 아픔을 치유하는 가슴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렇다. 논리적 규칙만으로 이 땅이 변화되지 않는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품는 사랑이 있을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갈수록 기계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들만이라도 마음의 정원을 가꾸면 좋겠다. 사랑을 심고, 진실을 심어서 우리의 마음에 먼저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해야 한다. 매일 말씀과 성령으로 심령의 묵은 땅을 기경한다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