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고난이 주는 축복
아프리카에 간 미국 선교사가 어느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강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데 원주민들이 모두 머리에 무거운 돌을 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도 무거운 돌을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너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왜일까요? 선교사가 머리에 무거운 돌을 이고 강을 건너는데 강 중앙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강 한가운데 가니 물살이 어찌나 센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물에 떠내려 가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선교사는 무거운 돌을 이고 갔기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급류가 있습니다. 그 급류의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떠내려 가는 인생이 많습니다. 그 인생의 급류에서 우리가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큰 돌 같은 고통의 십자가를 우리 어깨에 메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인생의 안전장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고난과 시련에서 피할 길을 주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게 하실까요? 영광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연단을 통해 성숙한 감사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1년 2개월이 넘는 동안 우리 모두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든 십자가를 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 무거운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주님세운교회도 최선을 다해 예배드려 왔습니다. 예배를 쉬지 않았습니다. “나라 살리기 일천번제 새벽기도회”를 270일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통해 예배가 더욱 뜨거워지고 성도들의 가정예배가 살아났습니다.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도 하나님께는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왜 그렇게 정글과 오지에서 고생하면서도 견딜 수 있을까요? 순교자들이 왜 순교당하는 자리에서 찬송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일 하다가 억울한 일 당해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오히려 찬송할 수 있을까요? 그 고난이 내게 주어진 특권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롬8:18에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의 고난에 동참케 하시고, 더욱 사랑하는 교회에 남다른 고통과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12제자는 그 중에 가룟 유다를 제외하면 모두 순교자였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산 순교자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십자가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을 수 있는 특권 주신 것으로 인해, 이 영광에 참여하게 됨으로 인해 감사드리는 성숙한 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