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속닥속닥] 막걸리 문화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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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속닥속닥] 막걸리 문화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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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千祥炳·1930~93)은 막걸리에 대해 ‘술이 아니고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그 막걸리가 이달 15일 드디어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정확하게는 ‘막걸리 빚기 문화’가 문화재지정 대상이다.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한 것이다. 특히 이번 ‘막걸리 빚기 문화’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2019년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제안해 이뤄진 첫 번째 사례로 의의가 크다.


# 막걸리는 예로부터 주로 농군들이 마시던 술이라 하여 ‘농주(農酒)’라고도 하고, 그 빛깔이 희다고 하여 ‘백주(白酒)’ ‘회주(灰酒)’, 걸쭉하고 탁하다고 ‘탁주(濁酒)’ ‘재주(滓酒)’라고도 한다. 막걸리는 일반적으로 쌀을 깨끗이 씻어 지에밥(고들고들하게 지은 된밥)을 지어 식힌 뒤 누룩과 물을 넣고 여러 날 발효시켜 체에 걸러 만든다. ‘막’은 ‘마구’, ‘이제 막’이라는 의미이며 ‘걸리’는 ‘거르다’는 뜻으로 ‘거칠고 빠르게 걸러진 술’을 말한다. 시간을 들여 곱게 거른 청주와 약주는 물론, 이들을 증류해 만드는 소주까지 죄다 막걸리가 출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막걸리와 막걸리를 빚는 행위가 중요하다. 


#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곧 막걸리의 역사나 다름없다. 『삼국지』「위서(魏書)」동이전(東夷傳)에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儛天)’ 등의 집단행사에서 음주가무가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우리나라에서 술의 역사가 늦어도 부족국가시대부터 전해오는, 아주 오래 된 생활문화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막걸리는 한반도 남부에 쌀농사가 정착된 삼국시대 초 무렵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 막걸리는 쓰임새가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첫 손으로 꼽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농주(農酒). 오랜 세월 농자(農者)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던 땅에서 농사일이란 게 특성상 ‘막걸리를 부르는 일’ 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뱃심, 뱃심 하면 막걸리다. 뱃심은 글자 그대로 ‘배(腹)의 힘’이다.

요즘이야 농사일이라도 웬만한 건 죄다 기계가 대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일일이 사람의 손을 타는 일이고, 과수원 일 말고는 거의 논밭의 바닥을 향해 구부리고 꾸물거려야 하기 때문에 배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논농사의 경우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쳐서 모를 키우는 것을 시작으로 쌀을 만들기까지 여든여덟 번(八十八=米)손이 가야한다고 하지만 기실은 골백번도 부족하다. 뱃심이 필요한 것은 논일의 본격적 시작이랄 수 있는 모내기부터. 못자리에서 쭈그리고 모를 쪄내 모춤을 만드는 건 양념이라 치고, 일단 모를 낼 논에 들어섰다 하면 그때부터 허리 고문이다. 일꾼 가운데 가장 연로한 두 사람이 ‘영좌(領座)’가 돼 논둑 양쪽에서 못줄을 띄면 눈금에 맞춰 모를 심는 게 예전 모내기 방식이다. 왼손에 모를 한 움큼 가득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서너  포기씩 떼어, 못줄에 빨간 실로 표시된 눈금에 맞춰 콕~콕~. 이렇게 모내기 풍경을 얘기하면 사정을 모르는 ‘도시촌놈들(?)’은 멋있고, 재미있고, 낭만적이라고 하더구만 낭만은 개뿔! 못줄을 한차례 옮길 때마다 대개 60~70번, 많게는 100번이나 모를 꽂은 다음에야 허리를 한 번 펴는 중노동인줄은 전혀 알지 못하니 그럴 테다. 평생 농사일로 인이 박혀 노련할 대로 노련한 못줄잽이가 그날 감당할 작업량을 감안해 모내기 진도를 조절하는데 얼추 한 시간쯤 되면 “한 대 뻥!”하는 우렁찬 명령(?)으로 휴식을 허락한다. “한 대 뻥!”이란 논산훈련소 식으로 치면 “담배 일발 장전!”이다. 한 시간이면 50여 차례 줄을 옮겨 띄니 줄잡아 400번은 용수철마냥 허리를 튕겨가며 손질을 해댔을 판에 쉰다는 게 고작 연초(煙草) 한 대 태울 시간이다. 10여분? 야속하다 싶지만 이내 논으로 들어가 다시 한 시간가량 고난의 전진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 논 밖으로 외출(?)이 허락된다. 이번엔 술참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입이 귀에 걸린다. 쉴 새 없이 허리를 써대는 통에 배가 다 꺼졌고, 그 바람에 허리가 끊어지는 듯 했던 참에 뿌연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안 그러고 배기겠나? 배가 꺼지면 힘을 못 쓴다. 구부린 채 모를 심으려면 허리 탄력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용수철이 망가진 셈이니 그럴 수밖에. 막걸리를 양푼으로 한가득 따라 목에서 봇물 터지는 소리가 나도록 단숨에 마셔버리면 하 힘들어 노랗게 변해가던 하늘이 순간 퍼래지면서 허리의 통증도 언제 그랬냐싶게 쓰악 가셔버린다. 연거푸 세 잔 정도 마시면 어느새 배가 불룩해져 또 치러야할 일전(一戰)이 만만해 진다. 술참에 이어 식사를 하는 정식 참, 점심, 다시 술참, 참, 술참, 참 등 일고여덟 번 막걸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 모내기를 마친 뒤에도 아시매기, 두벌매기, 삼동으로 이어지는 논 김매기와 벼 베기, 타작 등 어느 것 하나 뱃심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선시대 그 엄한 금주령이 내렸을 때에도 농부들이 마시는 막걸리는 예외로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따금 소주를 찾는 이도 있지만 그건 단순히 술기운으로 고통을 잊기 위한 것이지, 막걸리처럼 뿌듯한 포만감과 함께 두둑한 뱃심을 주지는 못 한다. 농사일엔 그저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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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 칼럼니스트: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한국 중앙일보에서 경찰, 국방부 출입 등 사회부기자를 거쳐 문화재 및 인터뷰 전문기자를 지냈다. 향수를 자극하는 사투리나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에 탁월하고 유려한 문장을 더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특산물 소개 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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