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 돈 보내지 마세요. 죽으면 못 찾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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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 돈 보내지 마세요. 죽으면 못 찾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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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교회에서 예배 보는 김 선교사의 모습. 작은 사진은 김 선교사의 차. 이 차를 이용해 70명을 피란시켰다. 앞 유리에는 러시아어로 ‘목사님 차’라고 써놨다. / 데이빗 김 선교사 제공


주말 스토리 - 우크라이나 사역하는 데이빗 김 선교사


“현지에 남은 동역자, 제자 못 잊어”

미안함, 걱정에 매일 모여 울며 기도 

두고 온 차, 비상금으로 70명 피란길 

“5월 다시 그곳으로… 사역 계속할 터” 


지난 1월의 일이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급박해졌다. 미국 대사관에서는 경고 메시지가 이어진다. 1단계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4단계까지 올라간다. ‘곧바로 떠나라’는 얘기다.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마지막 사인이 왔다.


하지만 흔들림 없었다. ‘선교사란 사역하는 곳이 곧 마지막이다.’ 그런 소명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한국의 장모가 돌아가셨다. 94세지만 무척 건강하던 분이다. ‘혹시 어떤 계시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다.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했다. 며칠 뒤에 돌아온다며 왕복 항공권을 샀다.


단출한 차림이다. 달랑 작은 가방 2개가 전부다. 여권과 노트북, 핸드폰, 속옷 몇 가지와 세면도구가 전부다. 지갑에 현금도 별로 없다. 부부는 그렇게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났다. 장례를 마쳤지만 돌아갈 길은 이미 막혔다. 전황이 급박해진 탓이다. 결국 LA로 와야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데이빗 김 선교사 부부의 얘기다. 2020년 초에 파송돼 2년 남짓 사역하던 중에 이번 사태를 맞았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한인 선교사는 (미국 국적자 포함) 53가정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이들도 있다. 그리고 남겨둔 제자들까지.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나. 늘 SNS로 연결돼 서로 근황을 챙기고,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걸 못 느껴요. 그리고 아무리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요. 공황 상태나 마찬가지죠.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 뿐이죠. 함께 모여서 울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데이빗 김 선교사) 남겨진 자,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자. 쓰라린 어긋남이다.


“무척 아끼던 젊은 선교사 한 분이 있어요. 그곳에 남았죠. 사정이 오죽하겠어요. 돈을 좀 부쳐 주겠다고 했어요. 한사코 마다하더라구요. ‘도대체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너무나 마음 아픈 대답이 돌아오더라구요. ‘선교사님, 그 돈 오는데 며칠 걸릴텐데, 제가 죽으면 못 찾잖아요.’ 그만큼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인 거예요.” (데이빗 김 선교사)


김 선교사는 살던 곳을 그대로 남겨놓고 왔다. 집 열쇠는 현지 목사에게 맡겼다. “목사님, 비상금 5000달러를 남겨놨는데, 어디어디 있으니까 필요한 곳에 쓰세요, 차 키도 있으니 사람들 피란시킬 때 사용하시면 돼요.” 며칠 전이다. 현지 목사에게 연락이 왔다. “선교사님 차와 경비로 70명 정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어요.”


김 선교사 차는 5인승 폴크스바겐 SUV T-ROC 모델이다. 8시간 거리의 서쪽 안전지대로 20번 가까이 왕복했다는 얘기다. 혹시라도 마주칠 러시아군을 걱정해 러시아어로 큼직하게 써붙였다. ‘목사님 차’라고. 다행이다. 아직 불상사는 없었다.


김 선교사의 전직은 대학 교수다.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교수로 임용돼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안식년에 LA 와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인생의 진로가 달라졌다. 이후 ANC온누리교회 등에서 파송 선교사로 카자흐스탄, 태국, 키이우, 중국 등을 돌았다. 우크라이나는 이번이 두번째다.


그는 현재 남가주 일대에서 여러 교회나 모임에 초청돼 신앙과 우크라이나에 관한 얘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채워질 리 없다. 새로운 계획을 마련했다. “5월쯤 떠날 생각이에요. 동역하는 선교사 4명이 마음을 합쳤어요. (우크라이나 인근) 폴란드로 가기로 했어요. 거기 가서 피란민들 돕고, 말씀 전하는 사역을 이어갈 겁니다.”


백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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