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속도 줄이기
목수(木手)들의 숙련도를 가늠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나무 위에 망치로 못 박는 작업 관찰도 그 중 하나다. 기능도가 높을수록 망치와 못 머리의 중심을 정확하게 맞추고 힘의 분배도 일정하다. 멕시코 동북부 몬테레이주 출신의 목수 ‘세레즈’는 기능도 높은 솜씨 좋은 목수 중의 한 사람이다. 가끔 작업장에서 망치질 소리가 괜찮다 싶으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마주칠 때마다 으례 그가 하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빨리빨리"다. 그가 이 단어를 알게 된 것은 20여년 전, 고향 몬테레이에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하면서 늘어난 한인들과 일하면서 친숙하게 듣던 말이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현장에서 필자와 마주칠 때면 지금도 반갑다는 말 대신에 "빨리빨리"라는 말을 외친다.
이 말과 관련해서 세계일보가 오래 전 보도한 기사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운전자들은 녹색 신호등 점등 2초 안에 정확하게 경적을 울리고 식당에서는 5분 안에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고, 식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평균식사 시간의 4분의 1인 10분 이면 뚝딱 해치우며, 술도 바로 취기가 오르는 폭탄주까지 개발해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변모했겠지만 한인들의 문화 특성 중에 굼뜬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긴 LA의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알려진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다. 요즘 들어서 LA타운 내 사거리 인근을 운전할 때 자주 대하는 일이 있다. 주행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하지 않으면 뒷 차에서 경적을 울려댄다. 특정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급해졌다.
연중 내내 온화한 기후인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외지만, 속도와 관련해서 한국 건설 현장의 실례를 들어보자. 80년대 대단위 물량의 아파트들이 신도시에 세워지고 있었다. 각 층의 슬라브 콘크리트 타설기간을 한 층당 6일 간격(보통은 10일)으로 건설하던 때다. 그것도 한겨울 엄동설한에 스피디한 공정으로 인하여 두 배 가까이 속도를 냈다.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나면 며칠 씩 천막용 텐트천으로 외벽을 감싸고 여기저기 난롯불을 피워가며 양생(養生)을 했다. 속도전(速度戰)의 비근한 예다.
최근 광주 아파트 외벽붕괴 사고도 아래 층이 채 양생되기 전, 윗 층 작업에 속도를 낸 것이 붕괴 원인중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속도에 관한 개념을 정리한 글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속도가 신체의 기계적 속도라면, 디지털 정보화시대의 속도는 정신의 전기적 속도다. 사실 한국에서 빠른 것은 정신의 속도가 아니라 신체의 속도다. 유난히 빨빨거리는 한국인의 신체는 노동력을 단순투입하던 시절의 잔재다. 불행한 것은 이 속도가 공장에서 멈추지 않고 공장 밖까지 정복해버렸다는 것, 삶은 배려되지도 보호받지도 못한다.
삶의 질(質)을 잃은 곳에서 그것은 오직 속도계 위의 양(量)으로 존재한다.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발전이란 곧 속도의 증가, 즉 가속화의 과정이다. 속도를 두 종류로 나누어 보자면, 하나는 신체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도, 이를 외연적 속도라 하고 다른 하나는 발명·발견·개발·디자인과 같은 창의성의 속도, 이를 내포적 속도라 부른다.
진중권 교수는 그의 저서 '호모코레아니쿠스'에서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에 신체를 가속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가속화의 특정한 단계에서 양적인 속도는 정적인 속도로, 외연적 속도는 내포적 속도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50~60년대 태생의 시니어들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체의 빠름이 정신속도보다 빠르게 작동되어 왔다. 그 후 정보화시대로 전환하면서 전례없는 속도로 디지털 문명이 급속히 전개되고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달 입적한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이 다시금 시선을 끈다. 속도를 줄이고 좀 천천히 살기, 걷기와 명상에 관한 얘기도 자주 등장한다. 지나친 속도전에 대한 일침일까? 그가 살아생전에 결성한 수행공동체에 함께 참여했던 이를 통해서 그 분의 언행 중 일부 교훈을 옮겨본다. “매 순간을 깊이 살아라. 호흡을 조절하며 조용히 걷기와 멈춤을 반복해 나가는 명상도 필요하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수있다. 세상의 문제는 대개 멈출 줄 모르는데서 생겨난다.”
며칠 전 동네 우체국 앞 뜰을 지나다보니 10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해 봄 임을 알려줬다. 우체국을 지나 인근 포르투기즈 벤드(Portuguez Bend)산 자락을 걷다보니 먼 발치의 카탈리나섬 ‘투 하버’ 항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주말산행에 나선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