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속닥속닥] 한가위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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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속닥속닥] 한가위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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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다. 제 14호 태풍 ‘찬투(CHANTHU)’말이다. 발생 초창기만 해도 초강력 태풍의 위세여서 추석을 앞두고 꽤나 걱정했는데 그리 큰 탈 없이 지나갔으니-. 서울 등 내륙지방은 별 영향이 없었지만 그래도 제주도에는 거의 일주일 동안이나 많은 비를 뿌려대는 바람에 가슴이 두 근반 세 근 반하지 않을 수 없던 터다. 그런데 이번 태풍은 북상하다가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한때 머물렀고, 다시 내려왔다가 꺾어져 당초 예상보다 더 남쪽으로 치우치는 경로를 택하는 이변(?)을 보였다. 대개 가을 태풍은 제트기류를 따라 이동을 해나가기 때문에 이런 진로를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데, 이 역시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로선 천우신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태풍의 뒤끝이라 추석 보름달을 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얼핏이나마 볼 수 있었음에랴. 전날 밤부터 천둥 번개와 함께 작달비를 쏟아내며 요란을 떨다 낮이 되면서 빗발은 그믈었지만 하늘이 줄곧 잔뜩 찌푸린 탓에 달맞이를 허용치 않는 줄 알았다. 비록 널널하고 깨끔한 망월(望月)은 아닐지라도 ‘일년허도추(一年虛渡秋)’를 면한 것도 복(福)이라면 복이다.      


#추석은 달의 축제이다. 이름도 유래도 달과 관련돼 있다. 추석의 본 이름은 한가위다.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중국 사람들이 ‘중추(仲秋)’니 ‘추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떠 ‘중추’의 秋와 ‘월석’의 夕을 합쳐 추석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가요인 ‘동동(動動)’에서까지는 8월 15일을 ‘가위’로 했다. 

 추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인 조선후기 규방가사 ‘사친가(思親歌)’에서다. 규방가사는 영조시대 초중엽부터 등장하는 장르다. 그런데 한자 ‘嘉俳’는 우리말 ‘가위’의 소리베낌이다. 가위는 본디 ‘가부’, ‘가뷔’라 했다. ‘가운데’라는 뜻이다. 달이 자라고 사그라지는 변모 과정의 중간인 보름달을 가리키는 것이라 풀이된다. 지금도 신라 땅이던 영남지방에선 가운데를 ‘가분데’라고 한다. ‘한’이 ‘하다(大·正)’의 관형사이니 한가위는 결국 ‘큰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의 뜻이다. 한가위가 팔월 보름에 쇠던 신라의 명절에서 유래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추석의 맞춤음식(節食)인 송편도 달을 기리는 믿음의 산물이다. 송편은 쌀가루를 반죽해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솔잎을 깔고 찐 떡이다.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보름의 만월(滿月)로 차오르듯 풍년이 되길 바라는 염원을 형상한 것이다. 영측(盈昃), 만월은 곧 기울게 마련이라 기운이 쇠하고, 반달은 점차 커지므로 기운이 세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초사흘 달을 한자로 ‘재생명(哉生明)’이라 하는데 ‘처음 빛이 생기다’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열사흘 만에야 꽉 찬 보름달이 된다. ‘로셀(Laussel)의 비너스’란 게 있다. 기원전 2만3000년에 만들어진 구석기시대 여신상으로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곧 새 생명을 낳을 듯한 풍만한 몸매를 하고 있어 풍요의 여신으로 불린다. 이 ‘로셀의 비너스’가 오른 손에 반달 모양의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란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 13줄의 금이 그어져 있다. 바로 만월에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우리 송편의 속뜻과 꼭 같다.


#추석 때 올벼를 거둬 햅쌀로 빚은 송편은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송편에 넣는 소는 밤, 콩, 팥, 대추 등을 모두 햇것으로 한다. 열 나흗날 저녁 밝은 달이 비추는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데 예쁘게 만들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잘못 만들면 못생긴 신랑을 얻는다고 해서 처녀들은 다투어 예쁜 송편을 만들려 애를 썼다. 옛날엔 시집을 보내기 전 딸을 이렇게 교육시켰다. 또 가족 중 임신한 아낙이 있으면 송편 속에 솔잎을 가로로 넣고 찐 다음 한 쪽을 깨물어 솔잎의 뾰족한 쪽이면 뱃속의 아기가 아들, 가락이 붙은 쪽이면 딸인 줄 알았다. 


#달은 하나이지만 천 개의 강에 뜬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달이 가지는 넉넉한 보편성이요 기대어 ‘비나리’를 할 수 있는 종교적 가능태이다. 그래서 현해탄 파도 위에 부서지는 달빛을 보며 고향집 찢어진 문틈으로 어머니 얼굴에도 비춰달라고 노래(남일해의 ‘이국땅’)할 수 있고, 보름달을 보며 자자손손 무탈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누구라도 어릴 적 불러본 노래 가운데 ‘달아달아 밝은 달아’가 있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구인지 알 길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노래다. 이 땅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불리면서도 다른 노래들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지역에 따라 크게 변형되지 않고 거의 같은 버전인 게 특징이다. 달맞이 하면서 ‘저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양친부모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프다는 소박한 비나리이다.


#굳이 소원을 빌지 않더라도 달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달맞이 대상은 보름달이다. 꽉 차 한없이 둥그런, 그런 달이다. 그래서 아무리 속 터지는 억울함이나, 멱까지 치미는 울화에 혼절할 지경에도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올려다 보노라면 어느 결에 둥글둥글 마음마저 둥글어진다. 달은 공활한 하늘이어야 두렷하게 크고 더욱 신비하다. 끈적끈적한 여름 하늘보다 제법 선득해진 가을 하늘은 낮은 커니와 한밤중에도 쨍하니 검맑은 까닭에 제격이다. 당사실 같은 달빛이 몽환스레 쏟아져 내려 온몸을 휘감아 오면 가슴 가득했던 멍울이 스러지지 않고 배길 길이 없으리라. 한가위 달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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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 칼럼니스트: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한국 중앙일보에서 경찰, 국방부 출입 등 사회부기자를 거쳐 문화재 및 인터뷰 전문기자를 지냈다. 향수를 자극하는 사투리나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에 탁월하고 유려한 문장을 더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특산물 소개 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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