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의사당, 서글픈 아이러니
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영국의 11월 5일은 가이 포크스의 날이다. 1605년 어느 날, 가톨릭 신도인 가이 포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가톨릭을 탄압하는 국왕 제임스 1세가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연설하기로 예정된 11월 5일에 의사당을 폭파해 왕과 의원들을 모두 암살하기로 모의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인 의원을 미리 피신시키려던 동료 한 사람의 편지가 발각되어 의사당 폭파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가이 포크스는 목에 밧줄이 걸린 채 교수대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죽었고 그의 동료들은 교수척장분지형(絞首剔臟分肢刑)으로 죽음을 맞았다. 목을 매달고 내장을 발라내고 팔다리를 절단하는 끔찍한 처형이었다.
가이 포크스의 날에는 영국 곳곳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벌어진다. 젊은이들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폭죽을 터뜨리며 거리를 행진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주인공이 쓴 가면이다. 이날의 불꽃놀이에는 국왕과 의원들이 암살을 모면한 것에 대한 안도감보다 가이 포크스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안타까움이 더 짙게 배어있는 듯하다.
프랑스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쳐들어간 파리 시민들은 국왕 부부를 왕궁에서 끌어내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4‧19혁명을 일으킨 시민 학생 시위대는 대통령이 있는 경무대로 몰려들었다. 저항의 행진은 언제 어디서나 권력의 심장부인 왕궁이나 대통령관저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가이 포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왕궁을 노리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을 노렸다. 국왕이 의회를 방문하는 날에 의사당을 폭파해 왕과 의원들을 한꺼번에 몰살하려 한 것이다.
가톨릭을 탄압한 것은 국교도인 국왕이고 의원들 가운데는 가톨릭 신자도 없지 않았는데, 가이 포크스 일당은 왜 의원들에게까지 테러를 감행하려고 했을까? 국왕의 권한을 의회의 입법으로 제한한 1215년 마그나카르타 이후 의회주권을 확립한 영국은 전통적인 의회정치의 내각책임제 국가다. 가이 포크스와 그 동료들은 왕권을 견제해야 할 의회가 국왕의 가톨릭 탄압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하는 아이러니를 왕권의 횡포와 똑같은 자유의 적으로 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곧 의회민주주의다. 의회가 부패하면 정치가 타락하고, 정치가 타락하면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헌정질서가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 자유‧민주‧공화의 나라를 세운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아랫사람들의 반헌법적인 종신집권 충동질에 이끌리다가 슬픈 종말을 맞았고, 이 땅에서 5천 년 가난을 몰아낸 박정희 대통령도 개헌을 거듭하는 장기집권 끝에 측근의 총탄으로 쓰러졌다.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산 교훈이다.
모든 입법은 헌법정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이 최고의 가치로 천명한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입법은 위헌이다. 국회가 바른 자리에 서지 않으면 헌정질서도 바로 서지 못한다. 국회의 입법권은 국민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다. 국민은 국법체계의 최고권력인 헌법제정권력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각자 9명의 유급 보좌관을 거느리고, 각종 수당과 활동비를 포함한 연봉이 장‧차관보다 많은 1억5천만 원을 넘는다. 모두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 게다가 면책특권‧불체포특권까지 누린다. 다수 정파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범죄혐의가 아무리 뚜렷해도 체포되거나 구속당할 걱정이 없다. 헌법정신을 따라야 할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거머쥔 정당 대표의 뜻에 따라 투표하는 악습 탓이다. 의원들이 대중영합적 입법을 쏟아내며 선동과 괴담(怪談)으로 국민을 불안 속에 몰아넣는 나라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대중의 집단이기심을 국민의 뜻이라고 속이는 포퓰리즘은 헌법의 적이다.
권력의 일탈과 파행을 견제해야 할 국회가 정당 지도부의 일탈이나 대중정치꾼 몇몇의 파행을 감싸면서 도리어 견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사당은 서글픈 아이러니로 서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탄생시킨 헌법 제정의 달에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의사당 폭파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예사로운 아이러니는 아니겠다. 한갓 덧없는 테러리즘의 망상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