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내는 효과의 힘, 살아있음의 끝없는 열정
야생 토끼가 뛰노는 곳- 설산(72 x 84 inch, 2018)<사진 위>과 가야금 소리(84 x 122 inch, 2016).
박혜숙 작가
박혜숙 작가는 존재에 대한 의식과 공간을 느끼고 깨우치며 채우는 작업을 통해 작품을 구상해 왔다. 1000년의 우주시간에 한 마리의 작은 곤충이 되어 몸 전체를 공기에 부딪혀 던져도 보는 상상을 한다. 막막한 시간의 벽으로 가득 찬 벽에 몸을 부딪혀 흰 피를 흘리고 튀기며, 생을 허공에 찍어 바르는 작품으로 표현해 본다. 흰 피가 흘러 우주의 강과 합류하고 그 힘, 에너지가 작가 자신을 구제한다고 말한다.
‘살아 움직인다’는 내 몸 안의 온갖 감각과 신호들, 생생한 육신을 예리한 햇빛 공간 속으로 던져 떨어트려 본다. 작가는 지난 1982년부터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작가노트를 작성해 왔다. 박 작가의 노트에서는 향후 40년 간 작품을 구상할 때, ‘살아있다’는 감각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해 왔음을 보여준다.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을 사용해 수 없는 탐구와 시도 끝에 작가는 최근 ‘가야금 소리’와 ‘야생 토끼가 뛰노는 곳 – 설산’을 만들어 냈다.
인간의 얼굴과 말 시리즈 작품을 주로 구상하던 작가는 ‘필치’를 탐구하며 산의 연작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야생토끼가 뛰노는 곳 - 설산’이라는 작품은 먹빛과 석회가 마르기 전에 호미로 긁어서 효과를 낸 작품이다. ‘긁어내는 힘의 효과’를 이용해 힘찬 설산의 선들을 표현했는데 거침없는 야성의 정신, 그렇지만 절제된 미적 감각 사이의 긴장을 통해 현대회화에서 옛 그림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가야금 소리라는 작품은 가야금과 거문고 음악을 즐겨 들으며, 소리가 현대회화에서 어떻게 표현 가능한지를 숙고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야금 자체의 아름다운 형태와 빛깔스러운 먹의 흔적을 더하여 광활한 우주로 울려 퍼져 나가는 가야금 소리를 표현했다.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정서가 드러나는 동양적 정서를 주시해왔다. 우연을 가장한 흔적과 온 힘을 다해 무심한 듯 긁어내는 화법은 자연에 근접한 회화를 향한 작가의 절제된 내적 정열과 정신을 보여준다. 정리=우미정 기자
박혜숙 작가는:
1978년 서울대 미대 재학 중, 미국으로 와 UCLA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LA와 뉴욕, 서울과 부산, 북경 등에서 1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샌버나디노의 예술사랑 화랑에서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지난 5년 간 한국에서 작업을 하면서, 말의 연작과 산의 연작, 키스 시리즈 등의 대형 캔버스 작업으로 회화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탐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