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3형제' 80년만에 고향품에 돌아왔다
나란히 해군 복무 중이던 맬컴·르로이·랜돌프 3형제가 세일러복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 해군 홈페이지
80년전 오클라호마 폭침으로 사망했다 뒤늦게 시신이 확인된 트랩 형제의장례식이 지난 15일 엄수됐다. DPAA 페이스북
폭격으로 침몰한 오클라호마함 탑승
감식 종료 앞두고 극적인 유해 발굴
작년 확인 ‘형제’도 이달 중순 영면
스티븐 스틸버그가 감독한 블록버스터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에 참전한 4형제중 3명이 전사하자 나머지 막냇동생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미군들의 작전을 실감나게 그렸다. 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케 하는 현실 속 스토리가 뒤늦게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으로 침몰한 미 군함 USS 오클라호마함에서 한꺼번에 생을 마감한 바버(Barber) 집안 3형제의 시신이 확인돼 기적처럼 80년만의 귀향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해군은 22일 오클라호마함 폭침으로 숨진 맬컴 J 바버(당시 22세) 일등병과 르로이 K 바버(21)·랜돌프 H바버(19) 이등병 등 3형제의 유해가 지난 10일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위스콘신주 뉴런던 출신의 삼형제는 나란히 오클라호마함 승조원으로 근무하다 일본군의 기습적인 어뢰공격으로 배가 뒤집혀 침몰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막냇동생은 동료 병사들의 희생 끝에 목숨을 건졌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와 다르게 삼형제는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며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을 안겼다.
태평양 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당시 일본군 공격으로 오클라호마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 4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구출된 승조원은 불과 32명에 불과했다. 희생된 승조원들의 시신은 1944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양돼 하와이에 있는 공동묘지 두 곳에 묻혔다. 이후 유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1947년시신들을 꺼내 하와이 스코필드 미군기지에 있는 신원확인센터로 옮겨졌지만, 당시 기술로는 감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이에 주인을 찾지 못한 유해들은 호놀룰루 국립묘지 46개 지점에 나뉘어 묻혔다. 그러나 2003년 시험적으로 수습한 한 개의 관에서 실종군인 5명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성공하면서 신원감식 작업이 재개가 결정됐다. 나머지 신원 미상 유해를 네브래스카주 오펏 공군기지에 마련된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 감식시설로 옮겼다.
이를 1만3000여 점으로 분류하고 실종자 유족들로부터 DNA를 제공받아 신원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가2015년 시작됐다. 그렇게 해서 첨단 감식 기법으로 신원이 70여년만에 확인돼 340여명의 승조원들이 뒤늦은 귀향길에 올라 고향마을 또는 국립묘지에 잠들었다.
바버 집안 삼형제의 귀향이 특별한 이유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거니와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막바지에 시신이 확인된 승조원들이기 때문이다. 6년간 진행된 ‘오클라호마프로젝트’는 최신 기술로도 감식이 불가능한 신원들을 다시 재안장하는 등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 해군과 DPAA는 구체적인 확인 경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삼형제의 유해 신원확인이 같은 날 발견된 것을 감안하면 생애 마지막 순간을 맞는 이들의 형제애와 관련한 비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