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앞두고 사랑하던 부인 곁으로
대표적 한상·한인사회 기부왕
홍명기 이사장 87세 생애
고인은 1934년 서울 출생으로 중앙고를 졸업하고 1954년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콜로라도 주립대를 거쳐 2년 뒤 UCLA 화학과에 편입했다. 유학 중 정착해 페인트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고,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박차고 나와 51살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대표적인 한상(韓商)이다.
산업·건축용 특수도료를 개발하고 이를 생산하는 '듀라코트'를 설립해 30년만에 연 3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회사를 세계 특수페인트 시장 '톱 5' 반열에 올렸다.
고인은 2001년 사재 1000만 달러를 털어 '밝은미래재단'(현 M&L 홍 재단)을 설립하고 교육과 장학사업을 펼쳤다. 특히 폐교 위기에 처한 남가주한국학원을 살려냈고,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을 비롯해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 LA 대한인국민회관 복원, '전쟁영웅'으로 불리는 김영옥 대령 현양 사업 등 한인사회 숙원 사업 해결에 적극 나섰다.
듀라코트를 수십억 달러에 매각한 고인은 M&L 홍 재단을 활용해 기부를 이어갔다. 한미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금 256만 달러를 비롯해 모교인 UCLA에 200만 달러, LA 동부 라시에라 대학 100만 달러, 김영옥 연구소 37만 달러 등 거액을 쾌척했다.
고인은 세계한상대회 개최를 주도하면서 리딩 CEO(최고경영자) 포럼 공동의장을 맡아 모국 청년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해외 취업 지원 등의 사업에도 앞장섰다. 한상 사회공헌재단 '글로벌한상드림'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고, 솔선해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계 한상들 사이에서 '대부' 역할을 했던 고인은 최근 리딩 CEO 포럼 명예 공동의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고인은 평소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내가 하는 일이 한인들을 대표한다’는 각오로 일한다. 애국 애족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냐”는 말을 자주했다.
부인 로리 홍 여사도 지난 해 8월 21일 세상을 떠나 1주기를 앞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