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 누가 테이퍼링을 두려워할까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 내부에서는 자산매입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Tapering)에 나서야 한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연준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매달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과 주택저당증권(MBS)를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테이퍼링은 ‘가늘게 하다’는 원래의 단어 뜻처럼 매입하는 자산의 규모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포함해 다수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의회에 출석해 자산매입 한도를 줄이기 위한 연준의 기준인 '상당한 추가 진전'을 이루기까지는 여전히 멀었다고 말했다. 장기 평균 물가상승률이 2%를 넘고 실업률 4% 내외의 최대 고용을 달성할 때까지는 정책을 유지한다는 게 연준의 방침이다.
사실 지금의 경기 상황은 해석이 엇갈려 혼란스럽다. 연준은 최근의 물가상승이 일시적 인플레이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게 볼 근거도 있다. 미국의 7월 근원 인플레이션은 전월 대비 0.3% 상승해 지난 6월의 0.9% 상승보다 완화됐다. 미시간대에서 발표하는 소비자태도지수도 7월에는 전달보다 크게 하락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난 6월에 정점을 찍고 둔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3월에는 1.7%대까지 올랐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이달 초 1.175%까지 급락했다. 물론 전혀 다른 상황을 의미하는 지표도 많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5.4% 상승해, 6월과 같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2008년 8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과 비교해 7.8% 올라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고용 상황도 지난 7월 5.4%의 실업률을 기록해 아직 목표와는 거리가 있지만 역시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7월 일자리는 94만3000개 늘었다. 작년 8월 이후 가장 많다. 한편에서는 실적과 경제성장, 경기부양책이 모두 정점에 달해 향후 모든 것이 하락할 것이라는 ‘트리플 피크 이론(Triple Peak Theory)’을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낙관적인 기대감 속에 경기가 아직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월가의 3대 지수는 돌아가면서 연일 신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일은 사실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 연준이라고 인플레이션 전망을 항상 잘해온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자산가격 거품의 가능성과 그로 인한 불안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가 회복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히 확인될 수 있는 일이다. 코로나 19에 대응하기 위해 화폐 공급을 증가시켜 유동성을 푸는 것은 불가피했고, 늘어난 유동성은 위기 악화를 막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허용한다면 되도록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경기부양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래서 다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가 인상된다고 해도 크게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금리가 물가상승률과 비교해 너무 빠르게 오르지만 않으면 된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물론 부채위기와 자산가격 폭락 등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면 경제에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과도한 유동성을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자산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여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빠른 신용 팽창과 자산가격 급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면 3년 안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40%로 급증한다고 한다. 금융위기를 막는 방법은 빠른 신용 팽창을 강력히 규제하는 것 말고는 없다.
지금 단계에서 경기를 좌우할 가장 큰 변수는 델타 변이의 확산 여부다. 코로나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이 통화정책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재미없는 글을 아무도 읽지 않으리라 믿고 책잡힐 걱정 없이 마음대로 예상한다면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는 빨리 잡아도 내년, 금리 인상은 테이퍼링을 1년쯤 걸려 마치고 난 뒤인 내후년, 2023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