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훈의 속닥속닥] 파초에 대하여
정말 환장하겠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를 지났음에도 말복(末伏)이 몰고 온 더위가 단말마 같은 패악질로 푹푹 쪄댄다.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이럴 땐 부채고 선풍기고 다 소용이 없다. 그저 한 쏘나기 퍼부어 싹 쓸고 가는 게 으뜸이다. 하지만 물보라까지 휘날리며 한 차례 ‘셔~언하게’ 쓸고 지나가면 그것도 잠깐, 이내 식지 않은 투명회반죽이라도 뒤집어쓴 양 끈적끈적한 열기가 온 몸뚱이를 감싸 숨마저 턱턱 막히게 한다.
#이렇게 ‘죽일 듯한’ 무더위를 견뎌내기 위해 올여름엔 나는 나름의 한 가지 비책, 즉 ‘소서일사(消暑一事)’를 실행하고 있다. 바로 파초(芭蕉) 키우기이다. 파초는 예부터 선비들이 아취(雅趣)의 대상으로 아끼던 귀물(貴物). 조선 초 문신이자 화치(花痴)인 강희안(姜希顏)이 화훼전문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9품 중 2품에 꼽을 정도로 대접받았다. 파초는 바나나와 사촌쯤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지방에선 노지(露地) 월동이 가능하고, 제주도에선 자생한다.
#파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풀의 한 종류이다. 나이테가 없고 속은 비어 있지만 자르면 그 위에 다시 싹이 올라온다. 파초는 중심을 같이 하고 한 곳에서 나와 너른 잎이 여러 개씩 붙어 있다. 옛 선비들은 이 같은 파초의 생태적 특성에 갖가지 뜻을 부여해 가까이 심어두고 덕(德)을 기렸다. 이를 탁물(托物)이라 하는데 파초를 끔찍이 사랑해 <양초부(養蕉賦)>까지 지은 조선 초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의중이 절절하다.
“파초란 연한 바탕이 쉬 부서져 송죽 같은 곧은 자세는 없으나 중심에서 솟아나와 이어지는 모습이 진실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절로 맞으니 뜰 앞에 심어서 군자의 맑은 의론에 가까이 함이 마땅하다.”
#파초는 맑은 덕을 지니고, 군자는 이를 보고 맑은 복을 누린다. 파초의 덕 가운데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싱그러움일 테다. 한껏 자라면 지름이 한 뼘 굵기에 세 길(5m쯤)이나 되고 이파리가 한 발이 조이 넘으니 그 드리우는 자락은 온통 푸르름에 지배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특히 새로 뽑아 올린 이파리는 연할 대로 연한 까닭에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한 초록’이어서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파초의 별호가 ‘녹천암(綠天菴)’인 까닭이다.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수필 <파초>에서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하다’고 상찬했다.
파초의 너른 이파리가 때론 ‘무쌍(無雙)의 악기’가 되기도 한다. 푹푹 쪄대는 여름날 언뜻 소나기가 휘몰아치면 처음 “후두둑”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후두둑 탁, 후두둑 탁, 후두둑 탁탁 후두두 탁, 후두둑 탁탁 툭탁탁”하며 음률을 읊어낸다. 불협(不協) 속 화음(和音)이 신기하고 귀하기도 하지만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너른 이파리가 너울너울 춤까지 곁들이니 호사가 따로 없다. 파초를 끔찍이 사랑한 실학자 서유구(徐有榘)는 “폐병을 앓아 누워 있다가 빗방울이 파초 잎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명랑해져 병이 벌써 나았음을 깨달았다(『雨蕉堂記』)”고 했을 정도다. 청록파 조지훈 시인도 <파초우(芭蕉雨)〉를 남겼다.
옛 선비들의 파초 사랑 가운데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파초 이파리에 시를 쓰는 일일 테다. 조선 후기 화가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1783~1837)의 <파초엽제시도(芭蕉葉題詩圖)>를 보면 커다란 파초 옆에 새끼 파초가 자라고 있는데 그 밑에서 동자가 먹을 갈고 한 노인이 엎드려 파초 이파리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옆에는 탁자 위에 그득히 쌓인 책과 술병과 잔, 찻주전자까지 갖춰놓고-. 이처럼 파초 잎에 글씨를 쓰고 시를 적는 것이 문인의 아취(雅趣)였다. 이를 위해 내로라하는 선비 치고 사랑채에 파초 한 두 그루 심어 두고 벗 삼지 않은 이가 없었다.
#나는 올 5월부터 파초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여느 화초 가게나 인터넷을 통해 산 ‘뜨내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으뜸 정원으로 손꼽히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출신의 파초다.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풍운아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1519년)로 죽임을 당하자 제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은 정원이다. 양산보의 사돈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 소쇄원을 둘러보고 <소쇄원 48영(詠)>을 지었는데 제 43영에 파초가 등장한다. 바로 ‘적우파초(滴雨芭蕉: 파초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다. 그 파초의 ‘후손’이 분명한 한 그루를 양산보의 15세손인 현재 원주가 내게 흔쾌히 선물했다. 내가 파초에 열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찍이 서거정이 갈파했듯이 자고로 파초 분양은 속물(?)에게는 하지 않고 각별한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법-. ‘소쇄원 파초’를 선물 받았으니 일단 속물은 면한 셈 아닌가?
#파초의 또 다른 별호는 ‘앙우(仰友)’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 하늘을 향해 치닫는 키다리인지라 그 장한 푸르름을 온 몸으로 받으려면 고개를 젖히고 올려, 아니 우러러 봐야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온 친구는 이제 고작 내 허리춤을 넘보는 키다. 그래도 팔뚝보다 작던 놈이 뿌리를 내리고 두 달 남짓에 저만큼이나마 자라 준 게 장하기도 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그런대로 이파리는 내팔 길이만한 것으로 열 네 장이나 사방을 뺑 돌아가며 너울거리는 품이 파초입네 할 정도이고, 특히 쏘나기가 쏟아질 때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이파리에 후드기는 소리가 귀여울 정도로 앙증스럽지만 제법 악기 연주 같다. 내년 여름엔 분명 외려 내가 저 품안에 있을 테니 벌써부터 ‘까짓 거 더위쯤이야’하는 건방이 절로 든다. 이런 걸 청복(淸福)이라고 하는 건가?
이만훈 칼럼니스트: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한국 중앙일보에서 경찰, 국방부 출입 등 사회부기자를 거쳐 문화재 및 인터뷰 전문기자를 지냈다. 향수를 자극하는 사투리나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에 탁월하고 유려한 문장을 더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특산물 소개 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