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다음 주부터는 새로 착공하는 전남 장흥 현장으로 출근하셔야 합니다”라는 연락을 인사팀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현장을 따라 종종 이동해야 하는 것은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일상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 서둘러 다녀온 곳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Edward Hopper, 1882~1967)입니다. 

전시 중인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향하는 덕수궁 돌담길, 화강석 돌담들이 오월 봄비에 젖어 본연의 색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술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과의 3년 간의 협업 끝에 공동기획으로 열렸다는 입소문 때문인지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3만 명의 온라인 예약자가 대기 중 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판매 티켓을 구할 수 있으려나 하고 갔습니다만, 다행히 예약취소자 발생으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20년 영국 가디언지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 고립, 단절, 소외의 정서가 만연한 오늘날에 1900년대 초 미국작가인 호퍼가 재조명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호퍼의 그림을 돌아보며 다소의 궁굼증이 풀렸습니다.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휴게소, 영화관, 집 앞뜰, 레스토랑, 주유소 등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장소가 대부분이라는 점, 그리고 그림 속의 인물들이 마치 그림 앞에 선 관객 자신의 스토리일수도 있겠구나 싶은 착각을 느낄 만큼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시홀에는 호퍼 생전의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의 아카이브(Archive) 270여 점을 8개 섹션(호퍼의 일생을 다룬 다큐먼터리 기록영화관 포함)으로 나누어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여행 중인 장소, 창문너머 누군가의 뒷모습, 도시건축물 주변의 빛과 그림자 등 마주치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내면세계를 담담하게 그려냈더군요. 

진부할 만큼 평범한 그림 속 일상의 인물들이 마치 요즘 사람들 삶의 모습처럼 다가왔습니다. 뉴욕, 파리, 남미 등지에서 때로는 몇 년씩 거주하면서 그린 그림들도 여럿 보입니다. 자칫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현실을 새롭게 발견케 하는 그림들이었습니다. 

"왜 예술은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을까.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보이는 것 너머를 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를 화두로 삼았던 오종우 교수의 글 중,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 ‘간이휴게소(1952)’ ‘아침해(1927)’ 등 그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은 행복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에 짓눌려 생각을 잃어버린 듯한 인물은 호퍼의 다른 그림에서도 자주 만납니다. 그래서인지 호퍼가 그린 일상은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그림들은 정직하게 우리네 일상을 돌아보게 끔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낯설어 보이게 하지요. 그렇게 해서 삶의 의미, 즉, 진정한 일상과 자기 자신을 찿는 출발점에 우리를 놓습니다. 진정성이 주는 매력이지요.”(예술수업 321쪽, 오종우著, 2017). 

다음 날, 장흥으로 향하는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역(驛) 플랫홈에서 기다릴 때,어제 본 호퍼의 일상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다시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익숙하다는 것, 그것은 첫 시선의 생생함을 잃는 것일 겁니다. 모든 사물은 첫 시선에 포착될 때 가장 생기있게 다가온다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문제는 장소나 대상이 아니라 시선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연시 하는 일상 중에도 생기있는 시선과 가끔은 스스로 낯설어 하는 것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익숙할 만 하면 옮겨다니는 지금의 평범한 일상도 시선을 바꿔보는 것, 아울러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을 기른다면 진부한 일상이지만, 때때로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