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감탄과 행복
행복학자들은 명량한 정서를 갖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명량한 정서 즉 긍정의 정서를 갖는 좋은 방법은 감탄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조언한다. 감탄의 삶을 사는 것은 주어진 환경과 만나는 사물과 사건들 속에서 감격하고 탄성을 발하는 것이다. 감탄하면 행복해지고, 행복해지면 더 감탄한다고 한다. 감탄의 강화로 행복이 강화된다. 행복학자들은 감탄하기 위해서 살라고 권하기도 한다.
류시화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을 언급한다. 미셸 투르니에는 예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생 자체에 대하여, 자연의 변화에 대하여 예찬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임을 강조한다. 아침에 일어나 새 아침을 예찬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예찬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찬은 바로 감탄이다.
웃음이 좋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보다 더 좋은 것이 감동과 감격 그리고 감탄이다. 최근 밝혀진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은 엔돌핀의 4000배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다이돌핀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감탄할 때라고 한다. 감탄하는 것이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에 굉장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일상의 삶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감탄하는 목회자와 학자나 연구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하여 장수한다고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감탄사를 연발할 때 행복한 정서를 갖게 되고 행복을 느낀다. 우리들이 여행을 하거나 예술감상, 스포츠 관람의 가장 큰 유익은 감탄이다. 삶의 일상을 떠나 특별 활동을 하는 목적이 감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여행을 하며 감탄해야 한다. 감탄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 중요한 영양제를 들이키는 것이다. 감탄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도 감탄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자신이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연발하신 것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감탄을 본 받아야 한다. 감탄의 한 유형이 감사다. 사실 설교시간에 성도들이 ‘아멘!’ 을 하는 것도 믿음의 고백이지만 감탄하는 것이다. 아멘은 믿음의 유익 이전에 정서와 육체의 유익이 크다. 이런 점에서 설교를 들으며 아멘을 자주 해야 한다. 아멘은 설교자, 주변 성도, 본인 모두에게 행복의 에너지를 준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사소한 일상의 일들 속에서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특별한 광경이나 작품 앞에서도 감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탄의 빈도와 건강지수는 비례한다.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하고, 감탄에 능한 사람이 행복하다. 감탄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행복하게 한다. 남편의 작은 수고와 사랑에 감탄하면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
삶을 감탄으로 가득 채울 수가 있다. 시원한 물 한 잔에 감탄할 수 있고, 아름다운 경치 앞에 감탄할 수 있고, 맛있는 커피 한 잔에 감동하여 감탄의 탄성을 지를 수 있다. 행복한 탄성을 지르며 아침 식사테이블에 앉으라. 행복이 동석할 것이다. 식사하는 내내 감탄의 탄성을 통해보라! 아, 맛있다. 우와, 대박이다. 우와, 정말 맛있다! 탄성을 발하는 만큼 준비한 아내가 행복하고 함께 먹는 가족들의 입맛이 돋는다. 탄성하는 만큼 즐겁고 감탄하는 만큼 행복이 강화된다.
영혼의 화가, 또는 태양의 화가라고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74년 1월에 그의 평생지기인 아우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고흐는 감탄의 유익을 알았다. 예술가는 평범에서 감탄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필자도 고흐의 메시지로 이글을 마치려 한다. “독자 여러분! 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세요!” 오늘도 감탄이 풍성한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