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칼럼] 인생의 가을 어귀에서
가을이다. 고국의 가을하늘 같은 청명함은 없지만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가로수는 벌써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저 고운 빛깔은 누구를 향한 몸짓으로 곱게 단장하고 바람결에 나부끼는 것일까? 가을바람에 맞춰 춤추다 보면 곧 떨어지는 순간이 올 텐데 과연 저들은 그때를 알고 있을까? 정녕 자신의 떠날 때를 알고 하는 마지막 화려한 몸짓일까?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거리의 한 모퉁이에 서서 삶의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아픔들을 묵묵히 들으며, 언젠가 자신들도 서럽게 버려지리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자신들의 가을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있다. 자신들을 거름삼아 새 봄에는 새잎이 탄생하리라는 것을 믿기에 안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신을 아낌없이 버릴 줄 아는 섭리에 겸손히 순응했기에 그들의 빛깔은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했던 나무의 우직스러움이 가을을 지킨다. 가을나무가 있기에 아름다운 가을이 있다.
호박같이 둥글게 잘 익은 가을걷이 행복을 그 잎사귀마다 가득 나눠주고 싶다. 산다는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임을 가을이 올 때마다 배우며 나는 그렇게 늙어가고 철들어 간다. 가을은 이야기의 계절. 하지만 중년의 수다를 잠시 멈추고, 여물대로 여문 가을풍경을 음미해 본다.
무심하게 핀 정원의 아름다운 가을꽃들, 나만의 행복을 한아름 안아 본다. 그들이 전하는 가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그 향기로 전해주는 가을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아도 본다. 나무들은 한 해를 마감하며 하나 둘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며 저마다의 자태로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하고, 가을꽃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고 있다.
아, 아름다운 너희들로 인해 이 가을이 행복했노라고 감사의 입맞춤을 하고 싶다. 알베르 까뮈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선생님 가르침에 이 가을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금씩 여위어 가는 가을, 나는 소박한 미래의 창조적 괴짜의 꿈을 위해 지난 일들을 되돌아본다. 지난날의 아픔과 후회스런 일들일랑 저 낙엽들처럼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진솔한 가을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 시간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가을처럼 겸손하고 싶고 가을처럼 풍요로워지고 싶다. 화려한 꽃으로 만나 겸손한 낙엽으로 헤어지는 가을을 마주하노라면 고운 그 빛깔로 인해 나도 조금씩 그 겸손의 한 자락에 물들어 가는 듯하다.
꽃이 진 자리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며 나도 그렇게 익어가기를 바래본다. 내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 그때 자신있게 나를 향해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내 앞에 남은 이 가을 조각들에 열정을 다해 채색하게 해 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내 마음밭에 조심스레 뿌려놓은 작은 믿음의 씨와 좋은 생각의 씨앗들이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소중히 키우며 가꾸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주여! 이 가을엔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하소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후회 없는 내일을 위하여, 오늘도 아름답고 찬란한 또 한 조각의 소중한 가을을 남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렇게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가을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