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 미국도 부도가 날까
결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는 연장되는 모양이다. 여야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 하지만 12월까지다. 합의안을 보면 12월까지 부채한도는 28조8800억달러로 늘어난다. 지금보다 4800억달러가 늘어난다. 빚이 더 늘어나면 다시 의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원래 공식 부채한도는 22조 달러였다. 하지만 지난 6월 기준으로 연방정부의 부채는 이미 28조4000억달러로 법정한도를 넘었다. 임시조치로 2019년 8월 채무 한도규정을 2021년 7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7월 이후 지금까지 각종 비상조치를 통해 연명해 왔다. 회계연도 시작일은 10월 1일이다. 연방의회는 지난달 30일 임시지출 예산안을 통과시켜서 셧다운을 피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정부도 매일 지출이 발생하고 한편으로는 역시 매일 세금수입이 들어오기도 한다. 지속적인 지출금액이 수입으로 충당되지 못하면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가계처럼 정부도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을 때 돈을 빌려야 한다. 채무불이행, 흔히 말하는 디폴트는 말 그대로 빚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디폴트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다. 금리가 급등하고 시장의 공황과 경기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가진 패권국이다. 부채를 그냥 장부에 적어놓기만 하면 되는 나라다.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고 달러를 찍어내는 연준이 이 채권을 사들이면 된다.
현재 연준이 가진 국채는 5조 달러 규모에 이른다. 게다가 요즘은 금리도 낮다. 그런데도 부도위기라는 말이 가끔 나온다. 정부부채의 상한을 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의회가 이런 권한을 가지는 것은 미국 권력구조의 특징이다. 원래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은 예산편성권이 의회에 있었다. 권한이 행정부로 넘어간 지금도 미국에서 예산은 반드시 의회에서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이를 예산법률주의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의회가 정부부채의 상한을 법률로 미리 정해 놓는 것도 자연스럽다.
부채한도는 의회가 약 100년 전에 제정한 시스템이다. 정부가 차입할 수 있는 최대한도를 의미한다. 정부가 기타 정부 기관과 민간에서 최대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이다. 의회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따져 법정한도를 정해 놓았고, 역사상 98번이나 인상되거나 수정됐다. 만약 부채한도에 도달하게 되면 초과지출에 대한 부분을 신규부채를 통한 추가자금 확보로 메꿀 수가 없게 된다. 정부는 가지고 있는 현금과 조세 수입만으로 지출을 충당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연방정부의 셧다운은 쓸 돈이 없어 ”비필수적"으로 간주되는 연방지출 항목들이 새로운 예산안 통과 전까지 운영 중단되는 상황을 말한다. 필수적으로 간주되는 연방 부채의 이자 지급 및 국방 유지비는 집행한다. 그러나 여기에 쓸 돈까지 없어지면 그야말로 “디폴트"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부도위기는 넘겼다고 하지만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연방정부는 보편적으로 수입대비 지출이 많다. 2020년의 경우 약 3조1000억달러 규모의 초과지출이 있었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언젠가 빚은 갚아야 한다.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하듯 국가도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한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28조달러의 빚을 갚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달러를 가진 미국으로서는 돈을 계속 찍어내 이자를 감당할 수는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아직 역사상 한 번도 부도가 난 적이 없다. 1939년 부채한도 제도를 도입한 후 98차례 한도를 수정해 위기를 넘겼다. 이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가끔 부채한도에 대한 여야의 협상이 늦어지면서 문제가 되기는 한다. 2011년에도 이번과 유사한 사태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도 연방정부는 디폴트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