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빈대가 들끓는 집에서 살아요
부엌 타일이 깨지고, 창문도 고장나 나무 막대로 지탱하며 살는 한 입주 가정의 모습. 우미정 기자
LA시, 다운타운 아파트 긴급 점검
현관문 고장, 천장에는 물이 줄줄
“고쳐 달라” 거듭된 민원도 모른척
“수리 때까지 렌트비 보류도 가능”
침대 매트리스 안쪽에는 얼룩 투성이다. 집주인은 베드벅(빈대) 탓이라고 했다. 주방은 타일이 깨진 채 나뒹군다. 그나마 벽은 반쯤 헐렸다. 파이프 공사 때문이다. 현관문은 고장난 지 오래돼 잠기지도 않는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닫히지 않아, 바람이 숭숭 샌다. 나무 막대로 받쳐놓고 버티는 중이다.
21세기다. 전기차가 다니고, 우주여행을 다녀온다. 그런 세상인데. LA에는 여전히 이런 곳이 존재한다.
LA시에서 나온 인스펙터들이 18일 다운타운 남쪽 워싱턴 블러바드의 한 아파트를 급습했다. 입주자들로부터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실태를 조사했다. 지난 6일 CBSLA의 탐사 프로그램이 이 건물의 문제점을 지적한 지 수일이 지난 후다.
보도에 따르면 아파트 내에는 쥐와 바퀴벌레, 벽 곰팡이와 천장 누수, 빈대 등으로 열악한 위생환경에 처했다. 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민원의 내용이다. 이 아파트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는 한인타운 인근을 비롯해 LA 일대에 수십개의 프로퍼티를 보유한 굴지의 기업이다. 주로 저소득층에 주거시설을 공급하는 곳이다.
2019년 12월 이곳에 입주했다는 켈리 아구이메(51)씨는 본지 취재에 “화장실 천장 누수부터 깨진 창문 틈, 부서진 현관문 잠금 기능 등의 수리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며 “현관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2000달러 상당의 귀중품을 도난당하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또다른 세입자인 마리아 크루즈씨는 싱글맘이다. 그녀는 침실 1개짜리 아파트에서 두 명의 어린 딸을 포함해 부모와 함께 지낸다. CBSLA의 뉴스 영상에서 크루즈는 “우리는 빈대와 함께 살고 있다”며,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부엌 바닥은 갈라졌다”면서 쥐와 빈대 얼룩이 들러붙은 침대 매트리스를 들추며 설명했다. 싱크대 주변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는 흔한 일상이다.
아시안아메리칸정의진흥협회(AAAJ-LA)의 존 김 변호사는 “건물주가 렌트를 내놓을 경우,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라며 “세입자가 거주지에 대한 수리 요청이 거부됐거나 지연될 경우 민사소송에 들어갈 수 있다. 모든 과정은 반드시 서면으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법적인 절차는 시간이 소요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정치적인 해결책이 도움된다. 시 정부나 지역 의원 사무실에 단체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의 건물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됐다. 관리 회사의 홍보 영상에 따르면, LA 도심에 있는 수백 개의 아파트 단지에 투자 펀드를 받아 건물을 매입하고 저소득 가정을 위해 주택을 개조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고급스럽게 개조된 전 후의 사진들도 포함돼 있으며, 고품질의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점검에 나선 LA시 주택국은 “해당 아파트가 내달 정기 점검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조사를 위해 앞당겨졌다”고 밝혔다. 이에 김 변호사는 “주거환경에 대한 위반사항이 발견된 경우, 소유주는 45일 안에 수리를 마쳐야 한다.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세입자는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렌트비를 홀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방 1개, 욕실 1개로 이뤄진 해당 아파트의 월 렌트비는 1650~1926달러로 안내됐다.
보도 이후 관리회사측은 “코로나19와 다른 요인들로 인해 정비 기술진과 해충 전문가 출입이 불가피하게 지연됐다”며 “우리는 세입자들의 불만을 알고 있으며, 조치하기 시작했다”고 성명을 냈다.
우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