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돛대 위의 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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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돛대 위의 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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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숙명여대 석좌교수 


“나를 이슈마엘이라 불러라.” 허먼 멜빌의 해양소설 <모비 딕>의 첫 문장이다. 소설 속의 화자(話者)인 이슈마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데, 하녀인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 광야를 헤매다가 아랍인의 시조가 된 방랑자의 이름이다. 포경선의 선장 에이허브도 성서에서 우상숭배자의 대명사처럼 묘사된 아합 왕의 영어식 이름이고, 배가 출항하기 전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일라이자는 아합 왕과 대립하는 예언자 엘리야의 이름이다. 선장과 갈등을 빚는 1등항해사 스타벅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이성적인 인물인데, 커피를 즐겨 마시는 그의 이름은 세계적 커피전문점의 상호가 되었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벗어난 이름들을 소설에 등장시킨 멜빌의 의도에는 물질만능의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 서구 기독교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 짙게 깔려있다. 문명과 인간성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모비 딕>은 <리어 왕>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힌다. 모비 딕이라는 흰머리 향유(香油)고래의 공격에 왼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허브는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나 정복되지 않는 모비 딕’을 죽이려고 위험한 항해에 나선다.  


그는 포경선의 돛대 꼭대기에 스페인 금화를 걸어두고 ‘모비 딕을 발견하거나 죽이는 선원에게 금화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정작 모비 딕을 맨 처음 발견하고 작살을 꽂은 사람은 다름 아닌 선장 자신이었다. 작살에 꽂힌 모비 딕이 포경선 뱃머리를 들이받자, 작살에 연결된 밧줄이 선장의 목을 감아 바다 속으로 빨아들이고 만다. 일라이자의 예언대로 선원들은 모두 물에 잠기고, 이슈마엘 한 사람만 살아남아 고래와의 사투(死鬪)를 회상한다.  


고래는 자연적 생존본능에 따라 선장의 다리를 물어뜯은 것일 뿐인데, 그것에 도덕적 응징의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수요·공급의 상호작용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시장경제를 적정 규제범위 밖에서 구조적으로 뜯어고치려는 특정 이데올로기의 집념은 또 얼마나 반자연적인가? 


에이허브가 포경선 돛대 위에 높이 걸어둔 금화는 선원들을 위험천만한 항해로 내몰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내미는 선거공약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선거 때마다 내걸리는 금화는 장밋빛 꿈을 유권자에게 펼쳐 보이지만, 그 꿈이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솔깃할수록 허황되고, 달콤할수록 거짓이며, 거창할수록 가짜인 것이 정치꾼들의 공약이다. 차라리 ‘국회의원 전원 정신교육대 입소’처럼 황당하지만 속 시원한 공약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21세기 문명의 민주사회에서 오죽하면 공약사기죄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올까? 


선거 때의 공약만이 아니다.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에 직결된 사안에서도 무책임한 다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가 책임진다.” “북한에 핵실험의 아무런 징후가 없다.” “북한 정권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 과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발언이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마침내 핵폭탄과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북한은 최근 ‘핵 포기 절대불가’와 ‘핵 선제타격’을 아예 법으로 명문화했다. 책임진다던 대통령의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으면 놀란다.” 탁월한 정치가 샤를 드골의 고백이다. 


포경선이 거꾸로 뒤집히자 바다 속에 가장 깊이 잠긴 것은 가장 높은 돛대 위에서 번쩍이던 금화였을 것이다. 아무도 가지지 못한 금화는 선원들과 함께 바다 속 깊이 파묻혀 들어갔다. 주권자인 국민이 헛공약과 함께 민주주의의 파멸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여야 정치권이 돛대처럼 높은 문명국가의 꼭대기에 앉아 무지갯빛 선심공약을 마구 쏟아내는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모비 딕>의 첫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나를 이슈마엘이라 불러라." 문명에서 소외된 그 방랑자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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