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17> 연예계를 빛내는 미술가
조영남 미술전시회(위) 엄영수와 조영남. /엄영수 제공
#. 코미디 간판스타는 간판쟁이
개그맨 임하룡은 어쩌다 화가가 됐을까?
임: “요즘은 확실히 미술에 심취해 있어요. 하루 몇 시간씩 작업을 하니까 영화가 간혹 들어오면 흥미로워서 반드시 하게 되고 가장 안하는 게 코미디야. 참나, 왜 이렇게 된거야?”
엄: “내인생에서 가장 나를 괴롭힌 건 원수같은 코미디죠. 진절넌덜머리가 나잖아요. 한번 웃기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임: “나이가 들어봐 왠지 좀 하기가 쑥스럽구만(특유의 유행어). 코미디를 이 나이에 내가 하리?(특유의 유행어)”
엄: “작품을 골라서 한다니 코미디는 춥고 배고파야 하는 건데 갑이 되셨네요. 강남 갑이잖아요.”(학동사거리 강남 중심가에 있는 빌딩을 가리켰다)
임: “아니야 이거 전부 은행 빚이야 내가 뭐 있어, 가만... 아! 겨우 다 갚았나? 아니지 돈을 더 갖다 줬나본데?”
엄: “건물주가 됐는데도 촉이 살아있네요….”
임: “영화는 음향, 소품, 조명, 의상, 분장, 작가, 촬영, 편집, 홍보, 연기자, 연출자 등 수 많은 분야에 수 많은 사람이 공동작업을 하기 때문에 내 작품이 아니예요. 내 맘대로 못해, 시키는대로 해야 되거든. 그림은 내 맘대로 나만의 세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한정 다 할 수 있어요. 여기에 집념해서 깊게 빠지게 되면 건강에도 좋아요.”
엄: “코미디를 하다가 성공신화를 만들고 다른 분야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간다. 그때의 기분은 어떨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 코미디의 대표적 배우 서영춘 선생. 고전 유모어극장을 통해 흑백 TV시대 서민에게 큰 웃음을 주셨다. 다른 분도 웃음 주는 건 마찬가지다. 서영춘 선생은 그야말로 폭소탄이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배가 아파서 배를 움켜잡고 웃던 기억이 난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폭발적인 웃음을 경험했었다. 원래 직업이 간판쟁이였다. 시골동네 간판 제작하는 분들 만해도 미술 실력이 거의 수준급이다.
글씨도 명필이다. 상점 간판, 현수막 자막 소위 말하는 이발소 그림을 주로 그리는데 이 과정을 거치며 전문화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야에 묻혀 생계를 걱정해야 하니, 예술형이 아닌 상업형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보통 화가가 아니라 극장 정문에 설치하는 대형 선전간판을 그리는 그림기사다. 몸값이 대단했다. 그 간판만 보면 영화스토리가 대충 짐작이 간다. 배우와 똑같이 그리는 것도 기술이지만 영화의 분위기 내용을 암시하면서 표를 사는 입장객을 흥분시킨다. 극장간판만 슬쩍 보고와도 영화 한 편 다 본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서영춘 선생의 위력이다. 대형극장 간판이 지나가는 관객들을 극장 안으로 계속 끌어들인다. 시골영감 처음타는 기차놀이다. 차표~. 이 노래도 수 많은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불렀지만 서영춘 선생의 실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한 번 들으면 평생 기억에 남도록 실컷 웃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게 노래 할 수 있나. 신의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예우를 받는 상황에서 어려운 코미디언으로 변신한 것은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미스터리다. 웃기는 것과 관객의 반응을 박수계로 측정하면 단연 독보적인 분으로, 할 때마다 1등을 기록했다.
이렇게 잘 웃기는 웃음의 천재에게도 한과 고독과 좌절이 있었다. 연예협회 회장선거, 송해 선생과 한판승부, MBC, TBC의 사활을 건 그 시대 최고의 대결. 친동생 코미디언 서영수가 MBC 송해의 선거사무장을 맡았다. 형에게 반기를 들었다. 완전 코미디였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신파조가 따로없다. 연극이 아니고 실화라니, 출구조사를 했다. 코미디언이 별 걸 다한다. 1970년대 초였으니 정치인을 앞질렀다. 서영춘 후보가 1표 뒤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TBC 녹화중인 배연정 배일집을 긴급 호출했다. 사력을 다해 왔으나 1분 늦어 기권처리 되었다. 깨끗한 두 표 아깝다! 개표결과는 한 표차로 송해 선생의 승리 당선 확정! 서영춘 선생은 이때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괴롭던 시절이었다. 소주를 많이 마셨다. 옛날부터 안주 없이 소금을 대신 드셨는데 건강이 많이 염려됐다. 송해 어르신도 소주를 즐기셨다. 하루 15병씩 드신 적도 있다. 두 분은 천국에서 화해하시고 역시 누군가를 웃기고 계실 것 같다.
#. 사기꾼 맞을 준비
20년 전 일이다. "코미디언 역사상 최초의 추상화가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없었고 그동안 한 번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다 그렇게 태어납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그것도 한 시간씩만 공부를 하면 1년 내에 추상화 전시회 충분히 합니다”
“그림 얘기 꺼낸지 1분도 안되는 데 벌써 엄영수 개인전을 합니까?”
"제가 늘 옆에 있죠, 추상화는 어려워요. 작가 본인 아니면 그 누구도 그림의 뜻을 모릅니다. 너나 나나 모르기 때문에 하시라는 겁니다."
추상화는 어렵고, 추상화가는 더 어렵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설령 몇 년간 전시회를 열어 명예와 부와 즐거움을 누렸다 하자. 돈이 필요해지면 부당한 요구와 협박 공갈이 올 수 있다. 염영수가 사기를 쳤다! 추상화는 자신이 대신 그렸다. 양심선언을 하고 나오면 나는 대중의 공적이 되고, 퇴출당한다. 그나마 겨우 먹고 살던 코미디까지 접어야 한다. 코미디협회장을 하면 이런 것쯤은 당장 상상이 간다. 즉시 거절했다. 이후 그림 몇 점과 고급 명품 넥타이 선물을 들고 계속 찾아와 나를 설득하려 했다. 갖고 온 선물은 성의라며 받아달라고 억지로 놓고 갔다.
3년 후 원로 방송코미디언 초청 경로잔치를 일식당에서 개최하였다. 기분이 좋은 자리였다. 추상화 화가도 자리했다. 행사 마무리 단계에서 화가는 망신주기를 하여 보복할려고 작심을 하고 왔다. 원로선배가 있는 자리에서 "전시회를 왜 안 열어 주느냐?” "코미디언 미술교육을 왜 맡기지 않느냐”며 거칠게 항의 했다. 갖다바친 그림과 넥타이 그대로 돌려달라. 행패를 부린다. 숱한 풍파와 우여곡절을 겪고 살았지만 이런 별꼴은 또 처음이다. 매니저를 시켜서 창고에 보관했던 그림 석점과 명품 넥타이를 그대로 갖고 왔다. 예상했던 일이다.
“여기 끈도 풀어보지 않은 먼지 쌓인 물건 다시 가져가시오.” 오래 전 뇌물 준 게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것 같다. 업무방해나 명예훼손으로 고발은 하지 않겠다. 추상화 받았다가 초상화 그릴 뻔 했다.
#. 천재 살리기
조영남 선배와 30여년 전 일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연예인들 모이면 언제나 말이 많다. 식욕을 돋우기 위한 워밍업이라 치자. 선배는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는 분이다. 반드시 주변사람을 조용히 시키고 시선을 집중시킨 상태에서만 중요한 말을 한다. 아니면 또다른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반찬을 이그릇저그릇에서 끄집어 내더니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먹다 남은 밥을 계속 주물러 공모양을 만든다. 수백 번 주무른다. 남들 떠드는 소리가 말같지 않으니 듣기 싫다는 표현을 하려고 딴청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미역 깔고 김치를 올리더니 깍두기를 세운다. 젓가락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찢고 붙이고, 작업을 하는데 아주 진지하다.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머어머 이게 뭐예요? 세상에나 아유 별일 다 봐유! 탄성인지 핀잔인지 식탁을 보니 사람과 동물을 그렸는데 아주 잘 그렸다. 그럴 듯하다. 어린애가 반찬 투정하는 줄 알았는데 음식물 쓰레기로 순식간에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천재적인 예술가의 기질이 찐하게 느껴졌다. 백남준 피카소보다 훨씬 낫다. 절친 남진의 회고다. 조영남은 천재야 천재! 그런 가수가 어디 있냐 손재주가 깜빡 죽인다 죽여. 아버님이 목수셨는데 그 DNA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옛날 목수는 설계도 몰라야 머릿 속에서 상상하면 실물이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냥 만들어져 버린다. 영남이 노래도 봐라 자유롭게 제 맘대로다. 부쉈다 새로 지었다. 별짓거리 다한다. 천재랑깨롱."
살롱에서 술마실 때도 혼자서 작업에만 열중한다. 수박 참외 포도 과일 안주와 병뚜껑 이쑤시개를 갖고 재미있게 놀다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다. 설명을 하거나 자랑하는 법이 없다. 종업원 구경하라고 그냥 놔두고 나온다. 작품제작 과정이나 결과를 찍은 사진을 단 한 장이라도 남겨 놨어야 했다. 아쉽다. 가슴이 아프다. 나는 많은 작품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것만도 행운이었다. 인류 역사상 깊은 밤 잠자지 않고 일식당 룸살롱으로 다니면서 밤새도록 작품을 만들어 시민에게 봉사한 위대한 예술가가 과연 있었는가. 그는 번개작가로 천사처럼 나타난다.
한국에는 유독 천재들이 많다. 나만해도 어릴 때 천재 소릴 들었으니 천재는 파격적, 도전적, 골칫거리, 애물단지다. 키워준다고 걸어라, 뛰어라, 쉬어라, 누워라, 돌아라, 별걸 다 시킨다. 마지막엔 죽어라까지 시킨다. 그래서 천재는 사라진다. 내버려 두면 저절로 클 걸 공들여 씨를 말린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술가가 증가한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있는 증거다.
최백호, 김범용, 하정우, 조영남, 손철, 최영준, 남궁옥분, 정명재, 강석, 김인수, 전정희, 임원선, 최민수, 솔비, 이상벽, 임하룡, 배삼룡, 서수남, 배일호, 추가열, 서영춘 등 연예계 화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