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경제포커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지나치다
물가가 뛰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비 5.4%로 5개월 연속 5%를 넘어섰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이상으로 석 달 넘게 이어진 것은 1990년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4%로 13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독일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30년 내 최고 수준이었다. 중국은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10.7%로 올라서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국제유가도 80달러를 넘어섰다.
생산 차질, 즉 공급망 문제가 물가를 자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류 대란과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글로벌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물류 병목 현상이 대표적이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일단 공급망 마비는 예상보다 해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사슬의 재편도 있어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물가상승 압력은 당초 생각보다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1970년대와 같이 물가급등과 경기침체가 같이 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소비가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소비가 줄면서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경기가 침체되어 실업률이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특히 문제인 것은 돌파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더 오르고, 반대로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거나 통화량을 줄이면 경기가 나빠진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침체된 데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물가상승에 준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더욱 가속화된다.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거나 생산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결국 제품가격도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물가는 더 오르고 소비는 더 줄어들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경기는 더 나빠지게 된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했던 1974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0.5%였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1%였다. 만의 하나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라도 나타난다면 중앙은행은 현재 금융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강한 통화긴축을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는 다소 성급하다. 당장은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언급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물가상승은 주로 공급측면에 원인이 있고 공급대란은 생각보다 빨랐던 경제회복으로 늘어난 수요를 공급망이 따라오지 못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성장추세가 완전히 꺾였다는 시각은 아직 무리다. 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란 믿음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세계경제에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급속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그렇다.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의 수요급증은 이들 제품의 가격은 물론 기존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까지 뛰게 만들었다. 이른바 그린플레이션이다.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앞당기면서 이런 현상들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금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실제로는 팽창한 유동성과 급증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경기회복은 예상보다 빠른 데 비해 엄청나게 풀린 글로벌 유동성의 흡수가 지체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이제까지 무려 5조2000억달러를 투입했다. 전 세계 GDP 대비 민간과 정부 부채는 2007년 271.4%에서 지난해 2분기 357.3%로 86% 포인트 급증했다. 지금부터 서두른다해도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김상철 칼럼니스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MBC TV 앵커와 경제전문기자,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사회과학대,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