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10> 모창가수의 숙명
모창가수 '너훈아'가 열창하는 모습. 찜질방에서 폐암투병 하던 코미디언 김철민과 함께. 원자력병원에 입원 중인 김철민을 문병갔을 때.(위에서부터) /엄영수
#. 모창가수 탄생은 특정할 순 없지만 일반가수보다 열 배 이상 어렵다. 모창가수가 되려면 우선 흉내를 낼 대상 즉, 오리지널 가수가 있어줘야 한다. 스타급 가수가 먼저 있어줘야 모창가수가 흉내를 내게 될 것 아닌가? 노래만 똑같이 불러서는 관심을 끌 수 없다. 반드시 얼굴이 닮아야 한다. 세계인구 80억의 생김새는 제각각 다 다르다. 쌍둥이를 빼고 똑같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걱정이다.
모창가수의 생명은 목소리가 같아야 한다. 얼굴과 목소리가 동시에 같기를 강요하면 모창가수 하지 말란 얘기다. 사람의 지문이 다 틀리 듯 목소리 또한 같을 수 없다. 오리지널 가수를 존경하고 그의 노래를 흉내내서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싶어야 모창가수가 겨우 나올 수 있다. 이미테이션 가수는 매우 험난하다. '짜가'라는 비난을 들어도 영혼이 없다고 취급받아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오리지널과는 출연료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남의 노래로 남의 인기로 남의 덕으로 먹고 사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리지널 가수보다 환경이 열악했고 가난하게 태어났고 지식과 인격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창가수가 될 수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중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오리지널 가수를 시기·질투해도 안되고 앞서가서도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며 오리지널 가수가 있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무엇이냐 이런 가수가 있을 수 있냐 과연 이미테이션 가수는 탄생할 수 있을까
#. 가장 너훈아(본명: 김갑순). ‘형님 스웨덴 한 번 안 가시겠어요?’ 가자는 말이다. 확고히 같이 가고 싶을 때 강조해서 묻는 말이다. 이걸 갖고 가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하면 이게 바로 코미디다. ‘그쪽에서 공연요청이 왔는데 사회자 한 사람만 더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제가 형님하고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너훈아는 특별한 가수다. 모창가수가 본인 혼자 스웨덴을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사회자까지 데리고 가는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무조건 가야 한다. 안 갈 이유있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내 돈을 들여서라도 한 번은 꼭 가볼 곳이 아닌가?
평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국내 일정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사실 국내일정은 마음만 먹으면 조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한다면 엄영수가 너훈아에게 가자고 하는 것은 말이 되고, '짝퉁'이 엄영수에게 가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것은 아닐까? 밑바닥에 교만이 깔려 있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속인 것이다.
몇 달 후에 너훈아는 ‘형님 독일은 갈 수 있지요?’ ‘독일에서 초청 받았습니다.’ 또 가자고 한다. 아찔했다. 지금 덥석 ‘그래 가야지, 갈게, 한다면 지난 번에 거절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가겠다는 것 아닌가, 왜 처음부터 가고 말 일이지 이지경이 됐나?
일관되게 또 거절했다. 이유도 국내일정이었다. 한 번의 잘못을 숨기려고 두 번의 잘못을 저지른다. 나는 속좁은 미련한 인간이었다.
보통사람에게는 있을 수도 없는 큰 복을 차버렸다. 공연과 여행은 다음이 없다. 가고, 하고 볼 일이다. 어떤 공연이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준다. 추억이 쌓이고 우정이 깊어진다. 일파만파로 번져 좋은 일이 생기고, 미래로 세계로 한없이 진화해 나갔을 지도 모르는 큰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많다. 알량한 자존심은 실수와 후회를 남겼다.
#. '고향 논산에 땅을 샀는데 잔금을 못 치뤘습니다. 도와주세요.' 너훈아 모창가수 맞나? 엄영수가 방송출연 각종 이벤트 밤무대 해외공연 지방공연 CF, 영화, 연극, 특강까지, 아무리 많이 하면 뭐 하나, 일생에 땅 한 평도 산적이 없는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너훈아가 나보다 못한 게 무엇일까? 축하한다! 너훈아! 잔금을 즉석에서 해결해 주었다.
1년이 지났을 때 너훈아가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사람이기에 빌려준 돈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그러나 체면상 너훈아와의 관계상 그 얘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간이식을 하나, 수술을 하나, 약물치료를 하나 걱정했다. 결국 병은 악화되고 암은 말기로 갔다. 너훈아의 두 아들을 어렸을 때부터 볼 때마다 격려했는데, 우등생이었다. 베이징대학에 유학해 장학생이 됐다.
늘 아들자랑을 하는 게 낙이었다. 따져보자. 간 이식을 하면 성공확률은 50% 정도인데 중국에서 해야한다. 집을 팔고 두 아들 학업을 중단시키고 조기 귀국해야 한다. 성공했다 쳐도 몇 년을 더 살지는 모른다. 불투명하다. 병원 측 말기상황을 받아들이면 두 아들은 공부를 계속해 우수한 인재로 졸업하고 중국 내에 취직해서 어머니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너훈아는 오래 전에 결단했다. 후자를 택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가장의 길을 택했다. 그렇다. 가장은 이래야 한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도 괜찮다. 아름다운 가장 너훈아, 2014년 1월 57세로 4년 간의 간암 투병 끝에 하늘의 스타가 되었다. 잘가라, 영원한 좋은 동생 누가 너를 모창가수라 하겠나? 명품가수, 너훈아 가장!
#. 생체실험 김철민. 개그맨 김철민(본명: 김철순)은 가수 이문세를 흉내내는 모창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너훈아의 친동생이다. 방송코미디보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버스킹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다. 불우이웃,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장애인 돕기 모금운동을 벌여 선행을 베푼 길거리 천사였다.
코미디협회 가입할 때 얼굴 한 번 보고 어쩌다 방송국에서 공연장에서 지나치다가 얼떨결에 인사 한두번 한 것이 전부다. 서로 바빠서 식사 한 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꼭 사건 사고가 터지거나 병으로 쓰러져야 비로서 편안히 만나게 된다. 슬픈 일이다. 잘 나갈 때 서로 좋을 때는 생각도 못하다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대화를 갖게 되다니…. 죽을 때 잠깐 정신차리면 뭐하나? 슬픈 분위기에 의례적인 이야기 몇 마디 밖에,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우린 왜 인생을 이따위로 살까?
#. 김철민이 폐암투병 중에 동물구충제를 복용해서 큰 효과를 보았기에 계속 복용할 것이란 기사가 전 매스컴에 보도됐다. 병실을 찾았다. '구충제 효과 있나?' “없습니다. 오히려 간수치가 높아지고 간까지 망가졌습니다. 처음에만 낫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환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지 않나?, 사실을 전해주게.' 의사들은 구충제 복용하지 말라 경고했다. 김철민도 해로워서 중단했다며 바로 인터뷰를 했다. 그 후에 투병장소를 찜질방으로 옮겼다. 암세포가 열에 약해서 찜질방 치료를 했더니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며 기사를 냈다.
김철민은 개그맨이나 모창가수보다 폐암을 극복하기 위해 치료에 전념하는 환자로 유명세를 탔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찜질이 폐암을 고치는가?' 도로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원자력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목숨이 몇 달 안 남았다고 합니다. 언론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목적이 무엇인가? '병원진단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 그냥 매달려 있으면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겁니다. 낭설이든 정설이든 몸으로 부딪혀서 확인해 보고 싶어 다 해보는 겁니다.'
폐암? 원인이 뭘까? "길거리에서 오랫동안 노래하니 성대에 상처가 생기고 매연과 먼지 중금속에 목이 노출되 폐를 망가뜨린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유지해 가면서 자선을 했어야 한다. 보람찬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쓰러질 때까지 일하면 결론은 쓰러지는 것이다. 너무 몸을 혹사시킨 결과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 암세포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죽는 날 계산하기 싫고 살 날을 늘리기 위한 싸움을 벌려 꼭 이기고 싶습니다." 모창가수 김철민 위대한 도전, 목숨을 건 체험 대단한 용기다.
끝까지 저항하는, 생명을 향한 집념을 사랑하고 싶다. 명의가 만든 짜여진 죽음의 일정표를 거부하고 내가 만든 새로운 생명의 일정표를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그가 위대하다. 2021년 12월 형 너훈아 옆자리에 올라 창연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