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예쁜 ‘손주 사랑’... LA서 풀러튼도 한달음
“자식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몰라…손주는 내리 사랑”
“전적으로 맡아 키우는 상황이면 스트레스 굉장할 것”
에모리대 연구팀 논문 ‘뇌 사진이 증명한 할머니 사랑’
LA에 사는 그레이스 박씨는 일주일에 4~5일은 풀러튼 딸 집에 가 있는다. 지난 4월 출산한 손주를 봐주기 위해서다. 이미 5살, 2살 형제를 키우고 있던 딸이 셋째를 낳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육아 보조’를 자청한 것이다.
박씨는 “가녀린 딸이 아들만 셋을 키우게 됐으니 안쓰럽기 짝이 없더라. 마침 다니던 직장에서도 은퇴하고 여유 시간도 많았던 탓에 돕기로 마음 먹었다”며 “처음에는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이젠 손주들 보는 낙으로 산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또 “사실 내 자식 키울 때는 몰랐다. 먹고 사느라 바쁘고 피곤해서 아이들 예쁜 것도 모르고 지나갔다”며 “그런데 손주들은 완전히 다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무엇인 지 알겠더라. 밥 안 먹어도 든든하다”며 ‘내리 사랑’에 푹 빠졌다.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뇌에 새겨진 것이며 때로는 직접 낳은 자식을 향한 사랑보다 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간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에모리대 연구진은 최근 영국 왕립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어린 손주를 둔 할머니 50명의 뇌를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법)으로 촬영한 결과 이런 나타났다고 밝혔다.
3∼12살 손주를 한 명 이상 둔 이들 실험대상 할머니는 손주 사진을 본 뒤 뇌의 감정이입 영역이 강력하게 활성화했다는 것이다. 손주가 우는 사진을 보자 할머니 뇌도 고통과 스트레스를 느꼈고 손주가 웃는 사진에는 기쁨을 느꼈다.
특히 일부 할머니는 직접 낳은 자식 사진을 봐도 손주 사진만큼 강력하게 뇌의 감정이입 영역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고 연구팀은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릴링 박사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는 손주가 가진 만큼의 귀여움이 없다는 점에서 동일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로서 자식을 키울 때 느꼈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할머니로서 손주를 돌볼 때는 훨씬 적다는 게 많은 이가 꼽는 장점"이라며 "엄마보다 할머니인 걸 훨씬 즐기곤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육아 부담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현저히 다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레이스 박씨는 “지금은 딸 아이의 보조 역할 정도만 해주니, 예뻐하고 사랑만 주면 된다”며 “그런데 얼마 전 둘째 손주가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며칠 동안 젖먹이 셋째를 혼자 봐야 했다. 그 때는 사실 고되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자녀들이 출근하고 혼자 남겨진 손주를 맡아 계속 키워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런 경우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엄청날 것”이라며 “손주 보느라 폭삭 늙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릴링 박사는 앞서 비슷한 연구에서 아빠의 뇌 사진도 촬영했다. 이 실험에서도 아빠 중 일부는 자식 사진을 볼 때 손주 사진을 보는 할머니만큼 강력한 뇌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많은 공동체에서 할머니는 중요한 양육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할머니의 양육을 지원하는 게 아이의 복지를 개선하는 데 직접적 연결고리가 된다"고 말했다.
백종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