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큰 집, 작은 집
주말 오후가 되면 자주 방문하는 곳이 있다. 동네 도서관이다. 수십 칸의 책꽂이들이 환영하 듯 도열해 있다. 책꽃이에 각 분야의 책들이 가득하다. 요즘 자주 찾는 책은 분류기호 ‘A, 건축과 인테리어’다.
지난 주말부터 그 가운데 몇 권의 책을 보고있다. '작은 집’에 관한 책들이다. 건축 관련 책들이라 내외부 관련 사진 화보들이 많이 들어 있어 페이지 넘기기에도 수월하다. 현재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공사현장도 50여 세대가 입주할 공동주택인 아파트인지라 각 장(章)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주택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듯 하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사회적 구조변화로 출산기피, 비혼(非婚), 노년(老年)층의 증가 등 인구절벽 문제가 부각되는 때다. 더불어 1인 가정이나 독신자, 시니어들이 은퇴 후 거주할 만한 집, 다가구 셰어주택 등 ‘작은 집’에 대한 수요와 이에 따른 관심도 늘고 있다.
큰 집과 관련해서는 최근 한국의 모 기업인이 사들인 저택이 화제다. 베벌리힐스 단지 내 6개의 베드룸과 10개의 화장실, 사무실, 영화관까지 마련돼 있는 대형주택이다. 그래서일까 ’큰 집’과 ‘작은 집’이 교차되어 관심을 끈다.
원시(原始)시대, 비바람, 야생동물의 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쉘터의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 주택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요즘의 내 집 마련이다. 주택의 규모나 볼륨, 자산가치도 중요하지만 심플하게 주택의 소중한 가치를 헤아려 본다면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집’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효용이나 의미는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여하간 몇 권의 ‘작은 집’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작은 집이 주는 아름다움과 가치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몇 가지 요약 소개하자면 이렇다.
1) Open Concept Houses(Francesc Zamora著, 2018). 세계 각국 40여 주택의 건축, 인테리어를 소개하고 있다. 500~2000스퀘어피트 내외의 규모주택에서 공간활용 및 기능을 강조하면서도 주택이 갖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실내주방을 야외마당에 인접시킨 후 옥외 마당 쪽으로 전면개방할 수 있는 접이 문을 설치하여 야외 라운지로 확장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친환경적이면서도 공간의 극대화 사례를 보여준다.
2) Nano House(Phyllis Richardson, 2017). 컴팩트한 소형주택에 포커스를 맞춘 책. 소형 모바일 홈 형태의 집들도 포함되어 있다. 150~800스퀘어피트 규모들이 주종을 이룬다. 소재는 콘크리트 노출마감, 목재 및 석재 등의 천연자재를 많이 채택하여 사용했다. 군살이나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최소화한 기능위주의 공간배치가 많이 등장한다. 외관 디자인의 독특한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한인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도 소개돼 있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344스퀘어피트규모의 작은 집이다. 지면(地面)에서 한 층 깊이를 파 내린 후, 배수 파이프를 설치하고 그 가운데에 살림집을 배치했다.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를 표현한 듯 하다. 움직일 수 있는 모빌형태 집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도 나와있다.
3) Compact Houses(Gerald Rowan, 2013). 목조 중심의 800~1500스퀘어피트 규모, 도시 근교 주택 50여 작품의 평면과 입면도를 모아놓은 책이다. 작은 집을 위한 필수요소(Key factor), 산장주택, 랜초 스타일 홈, 펜션 풍의 목조주택 등을 소개한다.
4) Wood Architecture Now, Philip Jodidio, 2013). 트리하우스, 주말 주택, 홈 오피스 용도 등 다양한 작은 집들의 사례가 나와있다. 트리하우스의 경우, 뒷마당 나무 위에 각재 및 합판(合板) 등으로 벽과 지붕, 바닥 등 뼈대를 만들고 홈오피스나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활용하는 실례도 보여준다.
하여간 크든, 작든 내 집을 마련하고 싶은 사람들의 급선무라면, 우선 ‘마음 속에 그린 집’을 갖는 것 일 게다. 행정당국이나 개발업자들도 이제는 필지를 조성할 때 소형 대지면적으로 분할하는 것도 필요하고 관련 주택법규나 현행 조닝 등의 개정도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며칠 전 LA 차이나타운 내 270세대 규모의 노인아파트 건물주가 프로퍼티 부실관리로 기소됐다. 고장난 엘리베이터와 공용세탁실마저 오랜 시간 멈춰서고 위생환경 불량 등의 이유에서다. 변천하는 사회구조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 특히 노년층이 구입할 수 있는 작은 집들도 많이 보급되도록 금융이나 세제혜택들의 장치도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