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의 세상만사] 책임질 줄 알아야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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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의 세상만사] 책임질 줄 알아야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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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이 자기 연봉의 10배가 넘으면 상사의 꾸지람도 칭찬으로 들리고, 대출이 자기 연봉의 10배가 넘으면 갚을 마음이 없어진다.’ 은행의 오래된 암묵지에서 온 금언이다. 연봉 5000만원의 열 배인 5억원 대출을 은행에서 빌리면 상환할 마음마저 사라진다는 점이 궁금하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할 때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를 적용한다.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총소득으로 나누어 구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1000%다. DTI 1000%는 남에게 빌린 돈 갚을 마음마저 없애버리는 임계점이다. 


그런 마음을 돌려놓은 게 상환 기간이다. 5억 대출을 1년 안에 갚는 게 아니라 10년에 나누어 갚게 해 기간을 늘린 것이다. 원금만 계산하면 5억은 5000만원으로 줄고, 20년이면 2500만원, 30년이면 1600만원이다. DTI는 50%에서 33.3%가 되니 ‘갚을 마음’이 되살아난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에 규제하는 DTI 40%는 그런 점에서 옳다. 버는 돈의 40%를 대출 갚는 데 써야 하는 게 버겁지만, 그 빚으로 꿈을 이룰 수 있어 참고 산다. 빠듯한 살림에서 감내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이자는 다른 이의 꿈을 내가 앗아온 데 대한 보상이다. 국민은 빚을 그렇게 생각하고 이젠 상식이 됐다.


나라 살림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발표한 ‘2020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GNI(국민총소득)는 1940조3481억원이다. 국가부채는 중앙·지방정부의 채무(국가채무)에 공무원·군인연금 등 국가가 앞으로 지급해야 할 연금액의 현재가치(연금충당부채)를 더해 산출한다. 지난해 국가부채 규모는 역대 최고다. 국가채무(DI)는 846조9000억원으로 GNI의 43.6%다. 국가부채(D2)를 포함하면 1985조원으로 GNI의 102.3%가 된다. 한 해 번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써도 모자란다는 뜻이다. 증가 폭도 역대 최대다. 국가채무는 한 해 동안에만 123조7000억원이나 증가했다. 문제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빚이 불어나게 돼 있다는 점이다. 


국민뿐 아니라 나라 안팎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예산정책처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잇따라 우려하는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채무의 통제계획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도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한국의 부채 급증을 주요국에서 가장 큰 증가 폭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상환 기간이 장기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나 국민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채무자는 장래의 채무자가 아니다. 계약 주체와 상환 주체가 바뀐다. 채무자는 자라나는 미래세대로 바뀐다. 더욱이 DTI는 소득이 계속 증가할 거라는 가정을 품고 있다. 빚은 레버리지 효과를 보기 위한 마중물로 쓰여 소득이 늘어야 한다. 그래야 꿈이 생기고 갚을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나랏빚 증가액은 공짜복지를 위한 지출에 쓰였다. 


『한서(漢書)』에서 유래한 채대고축(債臺高築)이 생각난다. ‘채무(빚)의 누대를 높이 세우다’라는 뜻이다. 중국 주(周)나라 마지막 천자 난왕(赧王)은 무능했다. 난왕은 부호들에게 전쟁경비를 빌려 싸웠으나 패했다. 돈을 빌려줬던 부호들이 궁으로 몰려오자 높은 누대에 숨어 지냈다. 가계나 국가가 빚을 무서워하지 않고 흥청망청하다 보면 채대고축의 처지가 될 게 뻔하다.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가 앞날이 걱정인데 정치권은 포퓰리즘 성격의 ‘돈 풀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재난지원금을 공약해 180석을 얻는 압승을 거둔 여당이 30조원의 돈 풀기를 하겠다고 한다. 대선 주자들도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세계 여행비 1000만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억 원 통장’,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군 제대 시 3000만원’을 약속했다. 재원은 세금이다. 나랏빚이 소득을 늘리는 생산에 투자되지 않으니 세금이 줄 수밖에 없다. 지금 돈 풀기를 하는 지도자는 그 빚의 채무자가 아니다. 무책임한 그 말에 영(令)이 설 리 없다. 책임질 줄 알아야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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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니스트: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벤처중소기업학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예쓰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사)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 학교법인 영신학원 감사, 멋있는삶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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