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선행의 역효과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로버트 루프턴은 그의 책 "독성 자선: 어떻게 교회와 자선단체가 도움 받는자에게 피해를 주는가”란 책을 통해 모든 자선활동이 다 긍정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독교 관점에서 단기 전도여행 및 일시적 사회봉사는 좋은 활동이지만, 목적이 봉사자의 영적고갈 해결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추가로 그는 봉사단체가 구제활동 결과를 냉정히 평가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봉사자가 느끼는 심리적 보상을 기준으로 삼기에 그렇다고 지적한다. 예리한 관찰이다.
루프턴은 의료인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이 봉사자도 다음과 같은 '봉사자의 선서'를 하라고 권한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말자."
"응급상황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자제하자."
"고용·대출 및 투자를 통해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능력을 부여하자."
"봉사자가 자아 만족감에 도취되지 말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특히 말하지 않은 것을 감지하자."
"절대 해를 끼치지 말자."
그가 말하는 '해(害)'의 의미는 수혜자의 반영구적 의존성을 뜻한다. 우린 “물고기를 주면 받는 사람이 하루 동안 먹게 되고, 물고기 낚는 방법을 가르치면 평생 먹는다”는 말을 알고 있다. 이 원리를 단기선교나 일시적 봉사활동에 적용한다면 돈을 주고 음식을 제공하기보다 직업훈련소를 설립하고, 비즈니스를 통해 인력을 고용하고, 현지 사역자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루프턴은 또 다음과 같은 의존성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한 번 주면 감사해 한다."
"두 번 주면 기대감이 생긴다."
"세 번 주면 당연하다고 여긴다."
"네 번 주면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 번 주면 장기적 의존성이 생긴다."
필자는 비영리단체인 기독교학교를 지난 24년간 운영해 오며 위의 역효과를 자주 보았다. 학생의 경우, 예를 들어 숙제를 늦게 제출했을 때 교사가 한 번 마감일을 연기해 주면 무척 고마워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점차 그런 너그럼움을 당연히 여기고, 교사가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으면 불공평하다며 화를낸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편을 들어 교사나 학교에 항의해 오기도 한다.
다른 예를 든다면, 학비보조금(financial aid) 혜택을 받는 부모 중 소수는 처음엔 감사히 여기다 점차 당연히 여기고, 나중엔 보조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럴 때 정말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회의가 들게 한다.
루프톤의 지적은 교회나 비영리단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실 거의 모든 정치인과 다수의 국민이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 마음과 의도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정치인이 그런 정책이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교묘히 추구하는 것이 문제다. 또, 자기 돈이 아니라고 펑펑 써대며 '쇼'만 해 '숙주와 기생충(host and parasite)' 관계 같은 반영구적 의존성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혜택받은 자가 평생 특정 당(黨)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자선이나 구제가 아니다. 엄격히 따지면 돈을 주고 표를 사는 것이고, 수혜자가 생산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악행(惡行)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행이 도움받는 이로 하여금 자존감을 잃고 독립의 꿈을 접게 만든다면 구제 프로그램 자체와 접근방법을 재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낚시의 원리를 가르치자. 스스로 설 수 있게,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자. 절대 대상자에게 해를 끼치는 자선활동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