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파로스’ 와 ‘팔미도’ 의 등대 (1)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지상의 도로에 ‘신호등’이 있다면, 바다의 뱃길에는 ‘등대(Lighthouse)’가 있다. 섬이나 바닷가 항구가 있는 곳에 가면 파란 바다에 흰 거품 파도가 밀려오는 배경으로 외롭게 우뚝 서 있는 등대를 볼 수 있다. 관광객들에겐 한낱 로맨틱한 조형물로만 보이지만, 수산업이나 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등대란 달빛 없는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구명줄이며, 신호등이다.
‘등대’의 사전적 풀이는 “항로 표지의 하나로, 섬이나 바닷가에 탑 모양으로 높이 세워져서, 밤에 항해하는 배의 목표, 뱃길, 위험 등을 알려 주려고 불을 비춰주는 건축물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먼 옛날 등대가 세워지기 전에는 선박의 항구 유도를 위해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려서, 밤에는 횃불을 밝혀서 배를 인도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섬들로 구성된 그리스는 기원전 5~6세기경부터 횃불과 연기로 또는 항구 입구에 등표(Beacon)를 설치해
배를 유도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삼국유사에도 가야의 김수로왕(AD 59년)이 붉은 색 깃발을 단 배를 보고 봉화불을 올려 배를 유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BC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 입구 ‘파로스(Pharos)섬’에 세워 진 등대로, 이집트 파리미드와 함께 고대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 옛날 이집트는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거대한 등대를 세웠을까? ‘지중해(地中海)’는 ‘육지 가운데 있는 바다’라는 뜻인데,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스와 로마, 유럽 등이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해상무역이 성행하여 선박들의 운항이 많았는데, 특히 알렉산드리아 항은 당시 가장 큰 무역항이었다.
무역상들은 선박이 안전하게 찾아 올 수 있도록 항구에 거대한 조형물(신전)이나 기념물(동상)을 세워 안전한 입항을 유도했지만 흐린 날이나 밤에는 항해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야간에도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이 장치가 바로 BC 280년경 파로스섬에 역사상 가장 크고 높은 등대를 세우게 된 것이다. 파로스 등대는 흰 대리석으로 130m의 높이로 3개 층으로 이루어 졌고, 탑 꼭대기엔 화강암 반사경 앞에서 야자나무 땔감을 태워, 불빛이 무려 해상 47Km거리까지 비추었다고 한다.
등대의 형상은 피라미드처럼 맨 아랫층은 넓은 정사각형의 성채, 중간층은 팔각형, 맨 윗층은 원형으로
높이 올라 갈수록 좁아지고, 등대의 내부에는 약 300개의 방이 있어 군대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약 1600년 간 지중해 뱃사람들의 길잡이로 사용되었고,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파로스’ 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등대’ 라는 뜻으로 통용되었다. 파로스 등대는 3차례의 대지진과 잦은 벼락으로 허물어져 폐허로 남았다가, AD 1480년 이집트 맘루크 왕조 때 그 자리에 요새(카이트베이 요새)를 건설했다.
최근 알렉산드리아 해저 부근에서 파로스 등대의 잔해가 수백점 인양되어 이집트의 ‘고대유물위원회’가
등대 복원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보존위원회’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최초 등대는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 등대’로 1903년 4월에 건축되었으며 6월부터 첫 불을 밝혔다.
현재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40호로 보존되고 있다. 해발 71m 팔미도섬 꼭대기에 약 8m 높이로 세워진 이 등대는 6.25 전쟁 당시 연합군 함대의 시야를 밝혀줌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는 메인주의 케이프 엘리자베스에 있는 ‘포틀랜드 헤드라이트(Portland
Headlight)' 이다. 1787년 조지 워싱턴의 지시로 건설하기 시작해서 1791년에 완공되었으며, 아름다운 경관속에 등대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시인 롱펠로우가 이 등대를 자주 찾았고, 이곳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