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가격은 그대로인데, 왠지…
휴지 한 뭉치 45칸이나 짧아졌네
양 줄이고, 가볍게, 서비스는 빼고
은밀한 인상 기법 슈링크플레이션
쇼핑 시즌 앞두고 꼼꼼히 챙겨야
# A씨는 생활필수품을 장만하려 창고형 매장에 들러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를 구입했다. 30개 들이 한 박스를 사서 집에 와 보니 뭔가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예전 제품과 비교해 보니 곧 차이점을 깨달았다. 1롤당 425칸짜리였던 같은 제품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품절 사태를 겪은 이후 380칸으로 줄어든 것이다. 30개들이 한 박스를 기준으로 하면 10%가 넘는 3~4개 정도가 빠진 셈이다. 가격은 16.99달러 그대로였지만, 사실상 인상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 B씨는 돈까스 맛집으로 알려진 C업소를 자주 찾는다. 맛도 맛이지만 푸짐한 양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진 걸 느꼈다. 예전에는 둘이 나눠 먹어도 충분했는데, 크기도 작아지고 두께도 훨씬 얇아져 혼자 먹어도 그만인 양이 됐다. 가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뭔가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양은 줄이고, 서비스는 빼고, 판촉도 덜하고…가격은 그대로.' 공급망 혼란으로 물가 상승세가 강해지는 가운데 기업들이 소비자 몰래 사실상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다양한 기법들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소개했다. 쇼핑 시즌을 앞두고 꼼꼼히 챙겨야 할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기업들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는 늘어난다는 수요곡선 '철의 법칙'을 우회해 제품 가격을 은밀하게 올리면서도 판매가 줄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핵심은 가격을 인상하되 소비자 눈에 보이는 가격은 똑같게 하는 것이다. 저널은 국내선 항공권 평균 가격이 현재 260달러로, 25년 전인 1996년의 284달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그 사례로 들었다. 이 가격들은 물가 상승률이 적용되지 않는 명목 가격이다. 항공업계는 어떻게 20년이 넘게 티켓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비결 중 하나는 과거 티켓 가격에 포함된 서비스들을 덜어냈다는 점이다. 수하물 체크, 조기 탑승, 좌석 선택, 기내식 등 과거 티켓 가격에 반영된 서비스들을 제외하면서 고객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추가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비행기 좌석의 질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아지고, 마일리지 혜택도 줄어든 점도 티켓 가격이 그동안 인상되지 않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가격을 은밀히 올리는 방안으로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도 이용되고 있다. 이는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의 무게, 수량, 크기 등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이보다 덜 알려진 방법으로는 대용량 제품을 내놓는 방식도 있다. 흔히 '점보' 사이즈 제품이 일반 크기의 제품보다 단위 가격이 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역이용해 단위 가격이 더 비싼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들도 있다.
저널은 아울러 '원플러스원'이나 무료 배송과 같은 판촉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도 가격을 은밀히 인상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백종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