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잡역만 하던 전원주, 서민의 우상이 되다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33-2> 잡역만 하던 전원주, 서민의 우상이 되다

웹마스터

#. 남편은 인삼 경작자, 협회장 부인은 에누리왕

전원주 선배께서 부탁을 했다. 남편이 하는 일인데 꼭 엄영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알겠습니다" 하고 행사장에 나갔다. '전국인삼경작자협회 송년대잔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마도 남편께서 이 협회에 연관된 일을 하시나 보다 생각했다. 그게 아니다. 협회 회장이다. 인삼밭 5만~6만 평에 놀랐고, 거기에 인삼이 가득 심어져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놀라웠다. 그리고, 그날의 출연료는 보통 행사장에서 받는 것보다 두세 배나 많았다. 결정적으로 여기에 세 번째 놀랐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얼마나 드센지 어머니한테 꼼짝을 못했어. 부부싸움 하다가 벌컥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나가, 나가' 하니까 그냥 말없이 나가길래, 아! 부인한테 쫓겨나는 사람도 있구나 했는데 어머니가 '가긴 어딜가, 어딜가, 당장 돌아서요' 하니까 언제 나갔냐는 듯 돌아서서 들어오시더라구. 하여튼 어머니가 좀 별나셨지 별나셨어.” 


인삼경작자협회 회장이면 오랫동안 업계에서 기반을 굳혔을텐데…. 그동안 전원주 선배가 우리에게 보여준 생활은 절약·내핍·저축 아니었던가. 전기료가 아까워서 저녁이 되면 불 끄고 일찍 잔다든지, 시장에 가서 물건 값 깎느라고 세월 다 보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남편께서 인삼경작자협회장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 전원주의 모노드라마 '지킬건 지킨다'

아침마당을 KBS 간판 프로그램으로 만든 이금희 아나운서는 출연자들에게 선물도 하고, 식사도 자주 베풀었다. 부지런하고 예의가 바를 뿐더러 출연자를 배려할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의 방송인이다. 희귀한 초콜렛을 받을 때마다, 이름난 맛집에 초대될 때마다 너무나 고마웠다.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방송진행자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주 드문일이다. 그만큼 자기 프로그램과 출연자를 아낀다는 뜻이다. 어느 날 식사가 끝났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대로 그냥 헤어지면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원통할 것 같았다. 돌연 전원주 선배께서 앞장섰다. 


“이렇게 만나기가 쉬워, 이 팀이 다 모일려면 이런 기회 인생에 다시 없다. 오늘 신나게 놀고 가자구 자! 엄영수 시간 있지? 집에 가기 없어 다들 일어나 나가자구. 2차 가자 2차 가! 전원이 전원주 선생님을 따라서 아래층 노래방으로 내려갔다. 한두 명이 노래를 했고, 주문한 술과 안주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전원주 선배가 마이크를 잡고 톤을 높였다. 


"어머나, 어머나, 이를 어쩌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큰일 났어, 나 이거 어떻게 하면 좋냐. 집에 가면 남편한테 쫓겨나게 생겼어. 우리 집 어른,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해. 집에 일찍 들어갈 일이 있는데 큰일 났네, 여러분들 미안해 나 먼저 갈게, 내가 까먹고 있었어,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하면서 순식간에 옷과 가방, 전화기 선물을 챙겨서 황급히 바람처럼 사라졌다.


꼭 무슨 쇼를 보는 듯 했다. 사실 40여년 동안 전원주 선배와 같은 방송국에서 방송을 해 왔지만 한 번도 밤 늦게까지 있어 본적이 없었다. 술을 드시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일과 가정 밖에는 모르는 순수한 연기자일 뿐이었다.


정작 빨리 일어나야 할 사람은 전원주 선배 자신이었다. 서둘러 후배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먼저 가자는 계산이 이미 서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했다. 처음 당해 보는 사람들은 이상했을 것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빠져 나가 일을 보라는 것이다. 연예인 생활 자유롭지만 기다리는 집안 식구를 늘 생각해야 한다. 부모님이나 배우자 어른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 가장 주된 내용은 자기 스스로의 원칙 계율을 정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전원주를 만들었다. 인생은 버티는 것!

인기가 오르고 유명해 지면 홍보대사 요청이 쇄도한다. 전원주 선배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을 필요하다고 찾을까 선택해주는 것이 고마워 사양하지 않고 무조건 다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홍보대사를 어떤 것을 몇 곳이나 하는 지조차도 모른다. 원주시청의 홍보대사를 20년 넘게 가장 오래했다. 이것 또한 어머님 덕분이다. 이름을 전원주로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이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다 내 주변으로 몰려든다.

"사진 찍자, 사인해 다오, 별 걸 다 물어봐. 그러면 뭐든지 다 털어 놓고 진심을 보이지. 그럴 때는 행복을 느껴, 보람도 느끼고, 이 직업을 잘 택했구나 싶지. 누굴 만나도 내가 스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나는 그저 동네 싸구려 아줌마, 흔히 볼 수 있는 편안한 이웃일 뿐이지. 연기자도 잘난 척하고 세도 부리는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 별사람 다 있잖아."


따로 연기 관리를 한다든지, 팬 관리를 조직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 그냥 팬들을 만날 때마다 성심성의껏 정성스럽게 대화를 해. 듣는 사람이 기분 좋은 말만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누굴 만나도 그때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어. 그랬더니, 그게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큰 힘이 되더라구. 어떻게 아냐구? 영화나 CF, 이벤트쇼에 출연해 보면 개런티, 예우가 예전과는 천지차이야, 엄청나게 달라져 있어. 인기 없을 때는 어딜가도 안내하는 사람도 없고, 인기있는 사람들은 다들 데리고 가서 식사하면서 같이가자는 말 한마디 없어. 모임에 정식초대를 받아서 갔는데도 내 자리만 안 만들어. 자리가 없는 거야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알아서 빠져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어떤 배역은 밤중에 산에서 도망가는 장면인데 서울서부터 찍기 시작했지. 계속 뒷모습만 찍어. 그러다가 앞 모습을 찍어도 밤 신이라 누군지 알수도 없어 그 걸 함안까지 가면서 계속 찍어대는 거야. 산속에서 몇 개월 동안 야간촬영하느라고 엎어지고 긁히고 상처투성이가 됐어. 나중에 보니까 내 얼굴은 화면에 안 나와. 서러워서 한참 울기도 했지. 그렇지만 끝까지 버텼어. 버텨야지 별 수 있나.  


#. 식모는 지고, 전원주는 떴다

어머니는 6남매를 돌보면서 약간 1등 중독 같은 것이 있었다. 경쟁하는 곳에서면 무조건 1등을 하라고 다그친다. 맹렬여성 사내대장부 같은 여성이었다.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지만 시원스럽게 잘 쓰셨다. 6남매 모두를 결혼시켜 살림을 내주고, 내 집 마련을 해주었다. 덤으로 상가도 한 채씩 사주었다.


사는 마을에서 반드시 1등으로 살아야 하고, 불쌍한 이웃이 있으면 꼭 챙겨보라는 것이 어머님의 평소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큰딸이 평생 TV에 나가 밑바닥 역할만 하니 아무리 연기라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아니했을 것이다


식모라고 해서 무식하고 무능하고 얼굴이 못난이라야 하는 법은 없다. 그건  편건이다. 아름다운 식모, 현명한 식모, 재벌이 되는 식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식모시대는 갔다. 


전원주 선배의 회고. 아마도 내가 마지막 식모 전문 연기자 일거야. 다시는 나 같은 연기자 나올 수가 없어. 지금 누가 식모살이를 해. 식모는 아무나 해 얼굴이 받쳐 줘야 해. 그리고, 표준말 쓰면서 웃기는 식모는 나밖에 없어. 내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으면 연기자 못했어. 그나마 마지막 열차를 탄 게 다행이야. 식모라는 직종이 아예 없어졌어. 나는 복 터졌다니까. 내가 뭘 했겠어, 순전히 시대가 나를 만들어 준거야.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