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칼럼] 부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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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칼럼] 부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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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내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건너편 좌석 중간, 이십대 청년의 품에 안긴 아기는 공항이 가까워오자 발악하듯 울었다. 태어난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네덜란드에 온 것을 알기라도 했을까. 울음소리는 점점 드세어졌다. 아기를 안고 있던 청년은 어쩔줄 몰라했다. 사실 두 살쯤 되는 아기와 청년의 조합은 부자연스러웠다. 목적지에 도착해 입양아를 양부모에게 안겨주는 조건으로 항공편을 제공받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옆자리에 앉은 아기의 오빠(형?)로 보이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의 얼굴도 몹시 어두웠다. 불안해 보인다. 비행기는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도착했고 로비로 나가자 양부모들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이들 형제(남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부모 품에 안긴 아이는 공항이 떠나갈 듯이 더욱 거세게 울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내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보름간 유럽 체류 내내 그날이 떠올라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90년대 후반 미국 중서부 어느 대학에 안식년으로 머무를 때다. 간만에 우리 가족은 외식하러 스테이크집에 들렀다. 옆 테이블의 시선이 유난히 따가왔다. 아이들도 뭘 눈치챘는지 테이블 밑으로 발을 툭치며나를 건드렸다. 옆자리에 예닐곱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 아이였다. 그의 백인 양부모 부부와 식사 중이었다. 아이는 저녁을 먹기보다는 우리 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어두웠다. 


나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양부모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착잡한 심경으로 웃음을 거두고 애써 모른체 했다. 양부모는 내 눈빛을 피하며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아이의 손을 잡고 떠났다. 그 순간 놀랍게도 아이는 걸음을 한껏 늦추며, 아예 고개를 뒤로 제치고 우리 가족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당황한 양부모는 얼마간 신경질적으로 가는 방향으로 아이 손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당황한 나는 급히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식당을 뛰쳐 나와 아이가 간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거리가 상당히 멀어진 그때까지도 아이는 여전히 이쪽을 돌아보며 끌려가다시피 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본 여자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안식년으로 간 대학은 한국인이 많지 않은 대학도시, 자기와 비슷한 한국인 가족의 외식풍경에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도대체 무엇이 그 어린 아이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한국인이라는 핏줄이 당겼을까? 자기 또래에다 똑같이 생긴 내 딸아이를 보고 느낀 호기심일까? 예민한 감성의 그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상상하니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해 진다.  


자료에 따르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에 입양된 아동의 수는 약 50만 명이다. 그 중 약 40%인 20만 명이 한국의 입양인이다. 가히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 국무부 영사부에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아이는 10만 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양아의 삶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착한 양부모의 헌신적 사랑과 배려 속에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이들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양부모의 학대, 낮선 환경에 대한 부적응, 소외감 속에서 잘못된 길로 접어 든 이들도 무수히 많다고 한다. 


나는 그날, 식당에서 만난 양부모가 만일 가벼운 미소라고 보내왔더라며 딸아이 옆에 동석하도록 해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접촉을 꺼리는 눈치여서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한국이 일류 선진국에 걸맞게 고아수출국 오명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베이비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뉴스를 접할 때마다 혼란스럽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울던 아기도, 미국 어느 식당에서 만났던 여자아이도 이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하늘 아래 어떻게 살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 부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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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칼럼니스트: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를 졸업했다. 사우스캐롤라이 매체경영학 박사를 했다.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에 기명칼럼을 연재했으며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유려한 문장과 설득력 있는 글로 사랑을 받아 왔다. 그의 에세이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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