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무신론자를 품은 교회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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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무신론자를 품은 교회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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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뒤에는 내 책을 해설하는 대학교수들이 나타날 것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프리드리히 니체가 19세기 말에 내놓은 예언이다. 이 예언은 맞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100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철학교수들은 이미 ‘자라투스트라’를 강의하고 있었으니까.  


칸트가 '철학의 호수'로, 헤겔이 '근대철학의 완성자'로 유럽의 정신세계에 군림하던 시절, 그들의 이성철학을 망치로 깨부수며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라고 떠벌리는 정신질환자 니체를 철학의 큰 봉우리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니체를 모르는 채 철학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모더니즘 시대를 살았던 니체는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의 태아를 품고 있었다. 


니체는 교회를 ‘신의 무덤’이라고 조롱했는데, 그의 무덤은 뜻밖에도 교회묘지 안에 있다. 루터교 목사인 그의 아버지가 설교하던 뢰켄이라는 시골마을의 작은 교회다. 『반(反)그리스도』라는 책을 쓴 무신론자가 교회묘지에 묻히다니…. 교회는 신의 무덤, 교회묘지는 불신자의 무덤인 셈인가? 


“신은 죽었다!” 광인의 입을 빌린 니체의 이 섬뜩한 선언은 형용모순이다. 존재 그 자체이자 생명이 본질인 신은 죽거나 비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저 미치광이들이 죽인 신은 누구인가?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신을 죽일 수 없다. 광인의 무리가 죽인 것은 제도종교의 초월적 세계관, 도덕적 가치관이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그리스도교를 노예도덕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리스도 그분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수에게 경의를 품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상 오직 한 사람의 크리스천이 있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니체는 고난의 가시관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대체한 번영신학의 도그마를 비판한 것일 터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저버린 위선의 크리스천이야말로 정녕 ‘반그리스도’가 아닐까.  


신의 섭리와 구원을 믿는 신앙인들은 니체의 ‘신 없는 허무’를 결코 포용하지 못한다. 신이 아니라 초인을, 내세가 아니라 영원회귀를 외친 무신론자 니체를 두둔할 생각이 없다. 다만 2천 년 전의 유대교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지금은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두려운 채찍으로 날아든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는 오늘날, 교계의 상황은 어떠한가? 현세적 성공에 집착하는 기복신앙, 외형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추구, 어지러운 교단정치, 시끄러운 목회세습, 성직자의 성범죄…. 이런 행태야말로 신성모독의 불신앙 아닌가? 예수는 대제사장이 이끄는 산헤드린의 사형판결과 로마의 십자가 형틀로 처형됐다. 신을 모시는 최고성직자가 신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종교의 근본주의는 영혼의 자유를 용납하지 못한다. 종교권력은 세상의 어떤 도그마보다도 위험하고 오만한 폭력이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화형의 불길 속에 던져졌던가? 사랑과 용서를 선포하는 종교에서…. 교회를 신의 무덤이라고 모독한 니체의 시신을 독일의 작은 교회가 너그러이 품어 안은 것은 도그마를 버린 관용과 겸손의 모습 아닐까? 


교회와 니체, 종교와 철학의 관계만이 아니다. 국가의 영역에서도 이념의 도그마는 인간성을 짓밟는 사악한 불길로 타오른다. 민주정치의 토대도 경험도 전혀 갖추지 못했던 해방공간에서, 시대정신처럼 번져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물리치고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험난한 역사적 과업을 기적처럼 이끌어낸 건국대통령의 시신을 현충원에서 파내야한다는 사나운 목소리는 어떤 비인간적 도그마에 사로잡힌 외침인가? 


독일교회는 무신론자 니체의 시신을 교회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저주의 독설을 내뱉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초대대통령의 시신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한다는 파열음이 줄곧 터져 나오고 있다.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털끝만한 기여도 한 적 없는 저 누군가의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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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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