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전기밥솥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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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전기밥솥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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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사십년지기 대학동창이 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남편)으로서, 신앙과 믿음의 동역자로 삶의 모든 것을 나누며 지내왔다. 만약 누가 “대학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 친구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둘 다 우리가 만난 옥시덴탈대학에 진학할 계획이 없었다. 하와이 출신인 친구는 파도타기(Surfing)를 너무 좋아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소재한 UC샌디에이고, 아니면 UC샌타바버라에 가려했다. 그런데, 그의 고등학교 카운셀러가 옥시덴탈이 UCSB나 UCSD에 비해 더 우수한 대학이고, 바닷가도 멀지 않다며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친구는 옥시덴탈 진학 후, 파도타기를 하러 바닷가에 가려면 약 25분 정도 차를 몰고가야 했고, 부모님이 차를 사주지 않아 카운셀러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다며 혀를 찼다. 


나는 뉴욕에 있는 Syracuse 대학에 진학하려 했는데, 우연히 옥시덴탈대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4년간 풋볼선수로 뛰었지만 대학에선 풋볼을 계속할 계획이 없었다. 대학에 원서를 제출할 즈음 교장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분은 “우수하지만 작은 리버럴아츠에 진학해 공부도 제대로 하고 풋볼도 계속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질문하셨다. 2년 전 당신의 아들이 그런 대학에 진학해 매우 만족해한다며 옥시덴탈 칼리지를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풋볼팀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추천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며 수화기를 내게 건네주셨다. 얼떨결에 코치와 통화를 했고, 그다음 날 대학을 탐방해 인터뷰를 마쳤다. 나는 그렇게 옥시덴탈대학과 인연을 맺게됐다.  


신입생 시절 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친구는 하와이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다. 그래서 한국말도 잘 못하고, 마치 하와이 원주민같이 피부가 까맣다. 그래서였는지 우리는 같은 기숙사, 같은 층에 살았지만 거의 몇 개월간 “하이”만 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친구의 방 앞을 지나는데 그가 방문을 열어놓은 채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곡인지 알수 있었고, 그 노래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그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작은 전기밥솥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너, 밥(rice)을 먹을 줄 아냐? 그리고, 밥을 방에서 직접 지어 먹냐?”라고 물어보았다. “당연하지! 난 교내식당 음식을 싫어해”라고 친구가 말했고, 밥솥을 열어 보여주며 배 고프냐고, 남은 밥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사실, 그때가 자정에 가까웠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지 6시간이 지났기에 속이 출출했다. 요즘이야 기숙사에 음식을 파는 자판기도 많고 또 밤 늦게까지 서빙하는 교내식당이나 카페가 있지만, 80년대에는 학교식당이 문을 닫으면 꼭 차를 타고 주변에 있는 식당을 찾아야 했다.  


아무튼 밥은 고맙지만, 반찬도 없이 맨밥을 먹기가 좀 그렇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찾아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김'이었다. “너는 김도 먹을 줄 아니?”라고 했더니 “당연하지, 나도 한국사람이야!”라고 친구가 답했다. 나는 “잠깐만! 한국사람의 피부가 어떻게 그렇게 검을 수 있냐?”라고 물어보며 김을 얹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자신이 하와이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라고, 그리고 한국음식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의 만남과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십 년간 이 친구와 적어도 한 달에 한 두번씩 전화통화를 한다. 그리고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거의 두 시간 정도 수다를 떤다.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4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우리 딸은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아저씨들이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냐”며 의아스러워 한다. 딸 아이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절친이 있기에 조금은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꾸밈없이, 숨김없이 삶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대학에서 만난 게 감사하고, 그런 만남을 준비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다. 살다보면 그냥 스쳐가는 사람도 많지만, 곁에서 웃고 울며 함께 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선선한 가을을 맞아 그런 사람들과 차라도 한잔 나누자. 전화통화라도 하자.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귀한 축복이다. 절대 그런 사람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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