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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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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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던 고 서세원님 영결식에 참석한 코미디언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영결식장에서 생전 고 서세원이 좋아했다는 '숭구리 당당' 춤을 추고 있는 김정렬. 김정렬은 이 춤으로 영결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코미디언 동료들과 추억을 되짚어 본 2부 순서와 달리 엄숙하게 진행된 영결식 1부 모습.(위에서부터)


'숭구리 당당'의 부활 


서세원의 장례식을 코미디언협회장으로 한 것은 일반인의 여론조사와 협회원들의 의견을 전화통화로 확인해서 결정한 것이다. 70% 이상이 찬성했다. 언론과 유튜브는 현재 있는 사실보다 옛날 영상, 옛날 얘기에 매몰되어 사망한 서세원 또 죽이기, 가족 간에 싸움 붙이기, 가족 폄하하기에 열중했다. 없는 사람에게 증오와 저주가 과연 필요한가? 


캄보디아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사고 이후 한 달이 다 되도록 남의 가정사를 재탕삼탕 하는 것 밖에 무엇을 했나? 유족은 영결식에 일체의 언론사을 배제하고 비공개, 비방송으로 치른다고 결정했다. 언론 혐오증이 생길 만도 하다.


코미디협회의 입장은 다르다. 시청자의 알권리, 방송국의 보도임무를 존중하고 협조해야 한다. 문 걸어 잠그고 비밀리에 한다면 그 비난은 코미디협회가 다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몰카를 찍어 언론에 제공하려 했다. 다행히 영결식 직전에 극적으로 타결되어 한시름 놓았다. 


1부 목사가 가족 위주로 장례예배를 드리고 헌화한 후에 가족들 중 노출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별실로 이동했다. 2부 YTN, KBS 카메라와 기자가 입장한 후에 김학래 코미디언의 사회로 방송중계를 공개로 진행했다. 끝날 무렵 '뚝딱이 아빠' 김종석이 발언했다. "생전에 고 서세원 형님께서는 김정렬 후배의 '숭구리 당당' 춤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한 번 춰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기습공격이었다. 위험한 발상이다. 


몇 년 전인가. 남성남 남철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 김종석에게 사회를 맡겼었는데 두 분 선생님이 생전에 듀엣으로 무대에서 즐겨 추시던 ‘왔다리 갔다리’ 춤을 추도록 시켜 얼떨결에 나와 이용식이 함께 나가서 즉석 영결식 쇼를 했다. 어색했다. 그러나 평은 좋았고 장례식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서세원은 호상일 수 없다.


먼 이국 땅에서 애절하게 사망했으며, 진상규명이 전혀 안 됐다. 언론과 유튜브의 독설과 저주도 드세다. 유족도 세 가족이다. 서세원의 부인과 딸, 전부인의 딸과 아들, 서세원 누나와 조카. 코미디협회가 조직 폭력배의 공갈과 협박이 무서워서 하기 싫은 장례식을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가짜뉴스 유튜브를 봤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명천지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더 나아가 어떤 유튜브는 코미디협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은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서세원과 처지가 같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숭구리 당당'을 들이대면 온전하겠는가? 가족들의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고 성난 군중들이 쳐들어 올 수도 있다. 코미디협회가 장례식을 당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말려야 한다. 


그러나, 비겁한 코미디협회가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이 너무 험악하고 무섭다는 것을 코미디를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코미디에 가해지는 압력, 규제, 처벌, 억압, 갑질…. 지난 40년 방송활동은 실로 이런 것들의 연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해진 걸까? 이 땅의 코미디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니고 길들여지는 들러리가 아니고 예술성과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의리와 전통의 코미디언이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결단을 내렸다. 


코미디를 하다 죽는 사람도 있었는데 거칠 것이 없다. 'OK' 사인을 냈다. 김정렬이 앞으로 나섰다. 1981년 MBC 방송국 1기 개그맨으로 김정렬과 나는 같이 이름을 올렸다. 유일하게 단둘이 인기스타로 펄펄 날라다니는 수퍼개그맨 서세원이 주도하는 청춘만세 개그프로에 합류했다. 서세원과 '코미디 콩트 엄영수 서세원 코너'를 '김정렬과 발명품 코너'를 했는데 셋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43년이 지난 지금 서세원은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김정렬은 고인을 위로하는 '숭구리 당당' 춤으로 엄영수는 추도사를 하는 장례위원장으로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이 무슨, 이런 인연이 있는가? 장난 같은 운명인가?


이런 인연 보신 적이 있나요. 다음 생애에는 어느 우주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만나야 하나? 쳇 멘트가 좋았다. 우선 기선을 제압했다. 김정렬은 음주사건으로 자숙 중이었는데, 그동안 수양을 철저히 했는지, 철학자같은, 도인같은 생각이 들었다. "탄생은 기쁨이요, 죽음은 슬픔입니다. 생노병사로 돌아가는 마당에 슬픔만 가져가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죽음도 가야 할 길이라는 차원에서 기쁨입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기쁘게 가시라고 잘 가시라고 부드럽게 가시라고 뻣뻣하게 가시지 말고 흔들면서 가시라고 '숭구리 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  


춤과 말이 잘 어울렸다. 내용도 좋았다. 영결식장을 심하게 흔들어 댔다. 엄숙하고 고요했던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모두가 흐느꼈다. 북받치는 감정을 서로 이기지 못해 손을 잡고 부둥켜 안고 실컷 울었다. 춤이 끝났을 때도 한동안 울음은 계속됐다. 항상 우리를 즐겁게 웃겼던 숭구리 당당이 오늘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춤이 되어 우리를 위로하였다. 


김정렬은 영결식장뿐 아니라 중계를 통해서 본 시청자, 전국민을 울렸다. 민중에게는 개그맨들이 본 서세원을 보게끔 했다. 함께 울어 준 모든 분들의 울음 속에는 망자에 대한 고인에 대한 용서의 울림도 있었을 것이다. 김정렬 다시 떴다. 숭구리 당당이 부활했다. 전화위복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반전! 역전! 의 감동을 주었다. 서세원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한다. 삼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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