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주연(主演)과 조연(助演)
요즘 들어 러닝타임 2시간을 넘어 3시간짜리 영화가 많아졌다. ‘나이트메어 엘리(Nightmare Alley)’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마이 카 드라이브’ 등 최근 들어 관람한 영화들도 모두 상영시간이 3시간 가량됐다. 이렇게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진 원인 중 하나는 팬데믹으로 여가시간이 많아진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효과 때문인지 극장 로비 팝콘 판매대 앞에 늘어선 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나이트 메어 엘리'는 미국 각지를 떠돌며 손님을 호객하는 유랑극단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탐욕과 몰락을 그린 영화다. 최근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도 오랫동안 극단생활을 했다. 그의 작품 편력을 보니 20편의 TV드라마, 9편의 영화, 그리고 꾸준하게 수십 년 간 연극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60~70년대 그가 연극을 시작할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극단으로는 ‘신협’과 ‘자유’ 등이 있었다. 한때 연극을 자주 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명동 국립극장에서 차범석 원작의 ‘산불’, 대학로 소극장에서 본 문성근 주연의 ‘칠수와 만수’, 이만희 연출의 ‘그것은 목탁소리’ 등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대학로 소극장들운 무대장치가 열악했고 객석도 썰렁했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던 배우들이 많았다. 배우 오영수도 그런 어느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쏟았을 것이다.
당시의 한국 영화계 쪽을 돌아 보자면 주연급과 조연급 배우의 확연한 구분이 있었다. 당시의 영화 는 신파조,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되는 각본이 많았다. 따라서 주연급은 선남선녀 형의 배우들이 주를 이뤘다. 주연 남우들로는 김진규, 김석훈, 최무룡, 남궁원, 윤일봉, 신성일 등이 활약했다. 대신 다소 우락부락하거나 개성(?)있게 생긴 배우들은 주로 조연급으로 등장했다. 필자가 당시 감상했던 영화제목과 해당 작품에 출연했던 조연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이예춘(지옥문), 허장강(두만강아 잘 있거라), 독고성(5인의 해병), 김칠성(그 땅의 연인들), 장동휘(팔도 사나이), 장 혁, 조 항 등이 당시의 단골 조연급 배우들이다. 그들은 탄탄한 연기력과 개성있는 액션으로 작품의 격을 한 층 더 올리기도 하고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는 키맨의 역할을 했다. 배우 오영수도 그들의 뒤를 이어 오랜 조연생활 끝에 이번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였을 게다.
미국 영화판의 명 조연배우를 들자면 아카데미 등 유명 남우조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앤소니 퀸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멕시코계 미국인인 그가 출연했던 ‘길’과 빌질 게오르규 원작의 ‘25시’는 지금도 명화의 반열에 올라있다. 특히 ‘25시’ 라스트 신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그의 기막힌 얼굴 표정은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기록돼 있다. 어쨌거나 훌륭한 조연이 있으므로 주연이 빛나는 경우는 영화나 생활 속 일상, 정치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금년 3월 한국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라는 듯한 후보들의 공약과 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영어 단어 중에 'Manifest'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분명한 뜻을 제시하다' 혹은 ‘제시자의 이름’ 또는 ’전투기나 항공기의 최종 탑승자 명단’등의 의미도 있다. 어차피 대통령 한 사람만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는 없는 일, 누가 더 많이 능력있는 인풋(In Put)과 아웃풋(Out Put)을 해낼 인재들의 메니페스트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조연(助演)이라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누가 더 많이 준비하고 적재 적소에 투입할수 있느냐가 향후 나라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키(key)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자주 찾는 ‘설렁탕’을 차려내는 식당이 한 곳 있다. 메인요리인 '설렁탕'도 그럴 듯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나오는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다른 집보다 맛있다. 다시 찾게 되는 이유가 주연인 설렁탕보다 딸려 나오는 조연인 김치 맛 때문도 있다. 주연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각 분야에서 조연이랄수 있는 유능한 참모진이나 실무자 그룹을 어느 후보가 더 많이 참여시킬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