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C.S. 루이스와 크리스천의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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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C.S. 루이스와 크리스천의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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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 루이스는 회심한 후에 일평생 숙고하는 크리스천으로 살았다. 그의 농익은 숙고는 칼럼, 편지, 일기 그리고 강연을 통해 전해졌다. 그의 숙고가 담긴 책들이 출판되어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그의 책들이 아직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스스로 비전문가가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썼다는 <시편 사색>은 전문가 냄새가 진동한다. 신학교 강의실에서도 듣기 어려운 시편에 대한 깊은 통찰이 빛난다. C.S. 루이스는 시편 사색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다룬다. <시편 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C.S. 루이스의 <시편 사색>에 “묵인”이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포악하거나 음란하거나 잔인하거나 부정직하거나 심보 사나운 사람들과는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만남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덧붙여 설명하기를 이런 악한 사람들과 사귀지 못할 만큼 의롭고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악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무례를 범하지 않는 한 악한 사람들과 교제를 줄여야 한다”라는 C.S. 루이스 말에 공감한다. 그의 주장을 풀어보면 세 논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나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악하여 악행을 일삼는 사람과의 교제를 나눔으로 나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 그 악의 영향이 자기 삶에 끼치는 해악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선하지 못하다.

   둘째로 악한 영향을 견디지 못하고 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약하다. 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C.S.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가까이 있는 악의 영향을 이겨낼 만한 선함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선한 삶을 도모할 뿐이지 우리는 절대로 선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Totally Corrupted)한 존재임을 진실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늘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늘 나 자신은 악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우리 실체를 직면해야 한다.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영성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대화했던 아담도 넘어졌다. 성군 다윗도 범죄 했고, 베드로와 아브라함도 넘어졌다. 모든 인생은 악함과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담,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베드로가 넘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교제가 악한 자에게 보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무고한 희생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를 신뢰하는 누군가 우리 까닭에 악한 자의 희생제물이 될 수 있다. 10년 전 일이다. 펫북 친구가 내 이름으로 다른 펫북 친구에게 접근해 사기를 쳤다. 나와 친분을 과시해서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했다. 그 후로는 펫북 친구 신청자의 담벼락(일상)을 확인한다.

   C.S. 루이스는 경건한 삶을 구하면서 “죄악을 행하는 자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시인의 기도(141)를 주목한다. 우리의 묵인이 죄를 키우고, 좋은 게 좋다는 크리스천의 어정쩡한 태도가 죄가 기생하는 숙주(宿主)가 될 수 있다는 루이스의 일침에 주목한다. 경건은 민감함이다. 우리의 부주의한 언행과 교제가 악에 이용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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