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월급 모아 시작… <실리콘밸리> SV서 500만달러 투자
지난 1월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트웰브랩스 사무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구성원들. 첫줄 가운데가 이재성 대표. /트웰브랩스 제공
대사 넣으면 해당 영상 찾아주는
AI 기술 개발 스타트업 ‘트웰브랩스’
사이버부대 병사 출신 3명이 설립
군(軍)에서 갓 전역한 청년 3명을 중심으로 20대 남녀가 뭉쳐 IT(정보기술)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리고 1년 만에,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한 글로벌 기술 경연 대회에서 우승해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사로부터 500만 달러의 초기 투자를 따냈다. 이재성(28·대표이사)씨 등 5명이 공동 창업한 ‘트웰브랩스’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재성씨와 김성준(28), 이승준(26)씨는 국방부 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병사였다. AI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세 사람은 틈만 나면 서로 모여 AI 논문을 읽고 토론을 벌였다. 이재성씨는 “워낙 셋이 잘 맞아 ‘전역하고 회사를 한번 차려 보자’고 결심했고, 군대 월급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명씩 전역이 이뤄졌지만, 모임은 이어졌다. 국방부 면회처인 ‘스타카페’가 접선 장소였다.
모두가 민간인이 된 작년 3월, 마침내 회사를 차리기로 했을 때 이들이 통장을 긁어 모은 돈은 총 200만원(약 1640달러). 이 돈을 자본금으로 ‘트웰브랩스’가 설립됐다. 연세대 출신 경영학도 정진우(26)씨와 다른 직장에 다니던 이소영(28)씨가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돈이 없어 카페의 탁자 하나를 사무실로 삼고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던 작년 7월, 국제컴퓨터비전학회(ICCV)에서 MS가 기술 경연 대회인 ‘밸류 챌린지’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출전 회사(社)는 바이두와 텐센트, 카카오 등 쟁쟁한 글로벌 IT기업들이었다. 이 대표는 “박사급이 널린 AI 무대에서, 갓 졸업한 학사 출신들로만 구성된 회사가 이름을 알릴 둘도 없는 기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웰브랩스는 10여 개 기업이 경합한 ‘영상 검색’ 부문에 출전했다. 출품 기술은, 이용자가 기억 나는 영화의 대사(臺詞)나 상황 묘사 등을 입력하면, 유튜브 같은 동영상의 바다에서 정확히 그 장면을 찾아주는 AI(인공지능) 기술이었다. 예컨대 ‘아부지 뭐하시노’라고 치면 영화 ‘친구’의 교실 장면이 뜨는 식이다.
이 기술로 트웰브랩스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투자 제의가 들어왔다. 그중 인덱스벤처스가 있었다. 페이스북, 드롭박스, 블루보틀커피 등 90여 개 기업에 초기 투자했던 거물급 투자사였다. 인덱스벤처는 올해 3월 “차세대 동영상 기반 제품에 힘을 실어줄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60억원 투자를 발표했다. 소액 투자도 이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AI계의 아이돌’로 통하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장 페이페이 리 교수였다. 이 대표는 “제 영웅으로부터 투자받는 그 기분, 아세요?”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사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군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를 ‘한국 청년’으로 키웠다고 한다. “한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한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군대에 있을 때 저희가 그랬어요. ‘야, 이왕 할 거 회사 만들면 외화 벌이를 제대로 해보자.’ 열심히 해서 외화 많이 벌어오겠습니다.” ‘산업화 세대’ 입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최훈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