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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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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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으로 구속된 된 가수의 팬클럽은 가수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왜 가수에게만 가혹하냐?’라고 불평했단다. 그들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지적이라면 옳은 말이다. 우리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 부정과 불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함이 정치인들은 물론 재벌총수에게도 너무 당연해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에 차남 김현철 문제로 사과 담화를 했다. 대통령은 “(전략)...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김 대통령에게는 아픈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근사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는 핑계 대지 않고 부끄러움을 국민께 고했다.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지도자 모습이 그립다. 유죄를 선고 받은 정치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뻔한 잘못이 드러나도 되레 큰소리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 큰소리치며 황당한 논리를 편다. 증거와 증인이 있고 이미 모든 정황이 드러났는데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큰소리치는 고약한 사람이 많은 사회다.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는 하류사회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도자의 퇴출이 우리의 살길이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다.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이다. 이것은 ‘부끄러움’이 인간성의 원초적 특성이며,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감정임을 뜻한다. 개가 변을 보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개가 아무리 영특해도 개에게는 사람과 같은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 사회가 누리는 질서와 품격이 부끄러움에 있다는 것이 인문학적인 성찰이다. 서양 철학의 기초를 세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고르기아스’를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이 인간에게 중요한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삶(행복한 삶)인가에 대답을 찾았던 그리스 철학은 부끄러움을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동양 고전에서도 부끄러움을 말한다. 논어 위정 편에서 “법이나 형벌이 아닌 덕과 예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나라에 격이 갖춰질 것이다.”라고 했다. 맹자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언급했다. 이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맹자는 수오지심 즉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현대 문학에서도 부끄러움은 중요한 주제다. 윤동주의 <서시>는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이다.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다. 15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조세희는 이 작품에서 급격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에서 쫓겨나는 난장이 가족의 아픔과 좌절을 그리면서 우리 사회가 아파해야 할 부끄러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경의 위인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다윗의 위대함은 부끄러워하며 회개한 것이.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그들은 인간이 선악(善惡)을 분별하게 되었다. 그들이 선악의 분별력을 갖자마자 그들은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인간의 부끄러움은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지도자가 환영 받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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