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포기했던 한인 유학생, 수학의 노벨상 받다
프린스턴대 연구실 칠판 앞에 선 허준이 교수. 그는 “수학자는 점점 사라져 가는 분필과 칠판을 마지막으로 수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대학원에서부터 수학을 전공한 늦깎이 수학자지만 수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구로 5일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 쾌거
“시인 되겠다”며 고교 중퇴, 대학원 때 수학 공부 시작
美 매체 “18살에 라켓 잡고 20세에 윔블던 우승한 셈”
허준이(許埈珥·39)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했다.
국제수학연맹(IMU)은 5일 “필즈상 수상자로 허 교수와 필마리나 비아조우스카(38)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 위고 뒤미닐코팽(37) 프랑스 고등과학원 교수, 제임스 메이나드(35)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은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의 권위상이다.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가 없어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허 교수는 유학을 간 부모 밑에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와 석사까지 마쳤다. 대학원에서 뒤늦게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대학의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2012년, 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리드 추측을 증명해 일약 수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조합론 문제다. 허 교수는 경우의 수를 찾는 조합론 문제를 도형을 연구하는 대수기하학 방법으로 해결했다. 석사 학위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두 우주의 통로인 웜홀로 연결한 것과 같은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필즈상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대학원에서부터 수학을 공부한 늦깎이 수학자다. 어린 시절 수학과 담을 쌓고 시인이 되길 원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학에 입문한 것이다. 허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초·중·고나 대학 때는 수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수학·과학 전문 매체인 콴타매거진은 허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세계적 수학 난제를 푼 데 대해 “테니스 라켓을 열여덟에 잡았는데 스물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허 교수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고교를 중퇴했고, 검정고시와 재수 학원을 거쳐 서울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아 F 학점이 수두룩했고 그 탓에 대학을 6년이나 다녔다.
허 교수는 나중에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가 추천서를 써줬지만 미국 대학 12곳 중 일리노이대만 합격했다. 대학을 6년이나 다녔고 성적도 나빴으니 당연했다. 박사과정 첫해 수학의 난제인 리드 추측을 해결하자 한 해 전 그를 떨어뜨렸던 미시간대로 옮겨 박사 학위를 마쳤다.
이영완 기자 기사 A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