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친구를 미워하라
제20대 대통령선거의 당선인은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정치 초년생이다. 기존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불신 당했다는 증거다. 구역질나는 패거리정치를 끝내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이다. ‘보수 궤멸’을 떠벌리던 정치세력은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새 정부는 아예 무언가의 궤멸을 꿈꾸지 말기 바란다. 그따위 헛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심판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4·19 학생혁명으로 집권한 야당은 신·구파로 갈라져 밤낮 권력싸움을 벌이다가 군사정변을 맞았다. 6·10 시민항쟁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민간정치권의 분열로 신군부 후계자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과 투옥에까지 몰아간 촛불은 새로 등장한 권력의 극단적 갈라치기, 파렴치한 내편 감싸기, 소주성․탈원전․부동산규제 등 뜬구름 잡는 공상적 정책으로 그 빛이 사위어버렸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시대를 기대하던 민초들의 열망은 역사의 그늘에서 번번이 피눈물을 흘려야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국가권력의 임무를 네 가지로 꼽았다. 신에게는 참된 신뢰와 기도를, 시민들에게는 사랑과 봉사를, 관리들에게는 자유로운 이성과 판단을,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했다. 국민주권시대인 오늘의 용어로 말하자면, 자연법적 헌법원칙에는 신뢰와 충성을, 국민에 대해서는 멸사봉공의 헌신을, 공직자에 대해서는 진솔한 소통과 권한위임을, 공공질서에 있어서는 법치확립과 준법의 모범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권력의 겸손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시도는 권력의 겸손을 저버린 처사다. 헌법이 영장청구권을 검찰에 전속시킨 취지는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검찰수사권을 몽땅 빼앗겠다는 위헌적인 입법 추진이 누군가의 중대범죄를 ‘증발’시키려는 잔꾀가 아니라고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사법부가 사실을 확정하고 온 세상이 다 알게 된 권력실세의 범죄행각에도 끝내 결백하다고 우겨대는 저 뻔뻔함은 대체 어떤 인성(人性)에서 나온 것일까? 국민을 무지렁이처럼 여기는 권력의 오만 탓일 게다.
운동권공화국에서 검찰공화국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겸손한 권력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날 것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을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둘러싸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민망하다. 검찰은 물론 법조계 인사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지기 바란다. 소수당에서 나온 대통령이 특정 직역의 이너서클에 의존한다면 난맥처럼 얽힌 정국을 슬기롭게 풀어갈 수 없다. 소통과 포용만이 성공을 보장한다.
“성을 쌓지 말라!” 칭기즈칸의 유훈(遺訓)이다. 몽골의 후예들은 그 유훈에 따라 성을 쌓지 않고 길을 열었다. 안과 밖을 분리하지 않고, 소통과 화합으로 ‘해가 지지 않는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소통하면 고통이 없고, 소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通卽不痛 不通卽痛)” 동의보감의 가르침이다. 사람의 신체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도 적용되는 생명의 지혜이리라. ‘친문’은 무엇이고 ‘윤핵관’은 또 무엇인가? 끼리끼리 뭉쳐 대결하는 패거리정치를 끝장내는 것이 진정한 적폐청산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스스로가 취임 때 품은 통합의 의지를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오늘의 분열상을 극복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할 뿐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자 니체가 예수의 말씀에 빗대어 제시한 지성의 조건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풀이하면 ‘패거리를 벗어나라’는 의미쯤 되지 않을까? 대통령은 자기의 지지기반을 넘어서야 한다. 그 기반을 미워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거기에만 충성해서는 안 된다. 선거 때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선거 승리 이후에는 화합을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권력의 겸손이다. 대통령이 선거캠프의 유공자나 비선조직의 측근들에 둘러싸이면 눈과 귀가 막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서 큰 미움을 받을수록 국민에게서는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