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루이스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들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 대학교에서 평생 교수로 활동했던 C. S. 루이스는 20세기 기독교를 대표하는 변증가로 인정 받는다. 신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았고 신학 서적을 쓸 의도도 갖지 않았던 C. S. 루이스는 자신의 책으로 많은 사람을 전도 하였다. 닉슨 대통령의 참모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던 챨스 콜슨이 C. S. 루이스의 책을 읽고 회심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1959년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 4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이 선교사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설문에 응답한 선교사의 절반 이상이 C.S. 루이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미국에 한번 가 본 적도 없는 C. S. 루이스가 많은 미국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은 아이러니다.
C. S. 루이스는 대중과 소통하는 유능한 작가다. 1963년 11월에 작고한 그의 책이 아직도 매년 수백만 부씩 판매되고 있다. 나아가 그의 책을 읽고 변화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C. S. 루이스는 20세기 초반과 중반을 살았지만 21세기에도 그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무엇이 루이스를 이런 인물로 만들었을까?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C. S. 루이스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도드라진 요소가 보인다. 먼저 C. S. 루이스는 평생 인문학을 탐구한 인문학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커크패트릭(Kirkpatrick) 선생에게서 고전어와 논리적 사고를 배웠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C. S. 루이스는 고전을 공부했다.
다음으로 C. S. 루이스의 글쓰기다. 그는 평생 글을 썼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친구들과도 서신을 계속 주고받았다. 후일엔 작가로 독자들과 편지로 소통했는데 평범한 안부편지가 아니라 깊은 사색과 철학을 담은 편지였다. C. S. 루이스는 글쓰기를 평생 즐긴 사람이다.
C. S. 루이스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만난 평생 친구 아서 그리브즈와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서 그리브즈에게 힘들 때 글을 쓰라고 조언하는 편지가 있다. 루이스는 “사는 게 지긋지긋해지거든 글을 써, 잉크는 모든 병의 훌륭한 치료제라는 걸 난 오래 전에 발견했지.”라고 썼다. 이 문장에는 C. S. 루이스의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삶의 치료제였다.
그런데 인문학적 소양이나 글쓰기 훈련보다 더 중요한 훈련이 있었다. C. S. 루이스가 유능한 작가로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소설과 작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옥스퍼드 교수 시절에 몸담았던 두 클럽에 있다. 독서클럽 잉클링스와 기독교 찬반토론 모임이었던 옥스퍼드 소크라테스 클럽이다.
잉클링스는 매주 각자가 쓴 글을 낭독하면 다른 회원들이 비평하는 클럽이었다. 잉클링스를 통해 읽혀지는 글을 쓰는 연습을 했다. 소크라테스 클럽은 한 주는 기독교 신자의 발제에 비신자가 대답하고, 다음주는 비기독교 신자의 발제에 기독교 신자가 대답하는 종교 토론 클럽이었다.
이 두 클럽으로 C. S.루이스는 자기 객관화 작업을 했음은 물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읽혀지는 글을 썼고 책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죽은 지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수백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비판과 비난을 수용하고 철저한 자기 객관화로 자신을 다듬는 것을 C. S. 루이스에게서 꼭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