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다시 북한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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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다시 북한산에서

웹마스터

대니얼 김

제너럴 컨트랙터


모국에 도착하면 제법 높은 산부터 다녀 볼 참이었다. 지리산 천왕봉, 설악 공룡능선, 대청봉 등도 그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번엔 행선지를 바꿔 서울 근교 산으로 정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몇달 전, LA 베벌리 공사현장을 둘러보던 중 발목을 삐끗한 후로, 아직은 산행할 때 다소 발목의 피로도가 느껴져서다.


목적지는 오랫만에 다시 찿는 북한산. 하지만 해발 836미터의 북한산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우이동 도선사에서 출발하는 깔딱고개, 백운대 방향으로 코스를 정했다. 산길로 접어든다. 이른 아침의 숲속은 귀뚜라미 등 풀벌레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어디선가 '툭'하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며칠 전, 서점에서 소설가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발간된 그의 대표작 전집 중 북한산에 관한 에세이를 발견했다. 옮겨본다. 


“북한산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은혜가 있을 까닭이 없다. 책을 펴지않고는 책을 읽을 수 없듯이 북한산에 오르지 않고는 그 은혜를 입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사랑을 받기 위해선 사랑을 해야만 한다. 꽃을 사랑하면 꽃은 우리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새를 사랑하면 새가 곧 반가움이다. 사람은 사랑이 모자라서 메마르게 산다. 마음 속에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행복하다. 꽃을 사랑하고, 새를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거리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산엔 모든 것이 있다. 산은 이처럼 고마운 것인데, 특히 북한산이 고마운 것은 그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지리산처럼 거창하지 않고, 설악산처럼 교치(巧緻)를 다하지 않았지만, 산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움을 죄다 북한산에서 찿을수 있다”(山을 생각한다, 39쪽, 이병주, 2021년). 


알려진 대로 북한산 등반코스는 여러 곳이 있다. 불광동 승가사를 비롯해 대략 열대 여섯 곳의 나들목 코스가 알려져 있다. 예컨대 대남문에서 형제봉으로 빠질 수도 있고 대동문에서 병풍암을 끼고 백운대 반대편으로 올라설 수도 있다.


"이처럼 북한산 산행은 성곽과 성문을 장절(章節)로 해서 엮어진다. 어느 사람에게 있어선 철학, 어느 사람에게 있어선 문학, 어느 사람에게 있어서는 음악, 어느 사람에게 있어선 풍경의 파노라마, 곧 미술일수가 있고, 무념(無念)의 경지일 수도 있고, 시간과 기분에 따라 한 사람에게 이와 같은 의미가 기복(起伏)하게도 되는 것이다."(山을 생각한다, 61쪽).


한 시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이 선생의 글을 백운대 정상에 잠시 앉아 읽는다. 바로 눈 앞의 인수봉 암벽 정상에는 이른 새벽부터 올라온 듯한 클라이머들로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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