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아시아나와 기업결합 '9부 능선' 넘었다
아시아나 이사회 '화물사업 매각' 가결
대한항공, EU 집행위에 시정조치 제출
아시아나 노조, EU에 반대 서명지 전달
3년간 이어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절차가 또 한 번의 중대 고비를 넘겼다. 아시아나항공은 2일(현지시간) 이사회를 열고 대한항공이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인 EU집행위원회에 제출할 시정조치안에 포함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분리 매각안'을 원안대로 가결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이사회에는 5명이 참석했으며, 표결에 참여한 이사 4명 중 3명이 찬성했다. 1명은 중도 퇴장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후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내용이 담긴 최종 시정조치안을 EU집행위에 제출했다며 "남은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 긍정적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EU집행위로부터 늦어도 내년 1월 말까지 심사 승인을 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EU집행위가 그동안 제기해온 '유럽 화물노선에서의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며,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남아 있는 (미국·일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이날 대한항공이 '기업결합 시 경쟁제한 우려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EU집행위에 제출하는 데 동의하기로 결정했다.
시정조치안의 골자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으로, 이번 이사회 결정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사업 매각을 전제로 한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 절차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서울 모처에서 열린 이사회에는 유일한 사내이사인 원유석 대표를 비롯해 배진철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위원장,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등 4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했다.
사내이사였던 진광호 안전·보안실장(전무)은 최근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한 데 따라 출석하지 않았다.
약 4시간가량 이어진 이사회에서는 시정조치안의 동의 여부를 묻는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고, 이사회는 참석 이사 5명 가운데 찬성 3명, 기권 1명, 불참 1명으로 해당 안건을 가결 처리했다.
원유석 대표와 사외이사 2명이 화물사업 매각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찬성 측은 화물사업 매각안이 부결될 경우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에 대한 EU집행위의 승인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결국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간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강혜련 명예교수는 이사회 중간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이번 결정으로 대한항공은 EU집행위의 기업결합 승인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어설 가능성을 높였다.
EU집행위는 그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결합에 따른 '유럽노선 경쟁제한'을 우려해왔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매각과 더불어 대한항공의 14개 유럽노선 중 아시아나항공과 중복되는 4개 노선의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 반납 등이 거론돼 왔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포함한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이 즉각적인 EU집행위의 승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EU집행위로부터 '조건부 합병 승인'을 끌어낼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시정조치안에는 우선 아시아나항공과 기업결합을 한 뒤 화물사업을 다른 항공사에 매각해 경쟁제한 우려를 줄이겠다는 제안이 담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이사회 결정으로 유독 독과점 규제가 깐깐한 EU집행위의 심사 통과 가능성이 커지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9부 능선'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절차에 착수한 이래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국 가운데 EU와 미국, 일본 외의 11개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아직 EU, 미국, 일본의 승인을 남겨놓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시정조치안에 담은 것은 이들의 승인을 끌어내기 위한 조치다.
대한항공은 동시에 아시아나항공 노조 측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과제도 남겨놓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일반노조)와 다수 조종사노조인 조종사노조(APU), 소수 조종사노조인 열린조종사노조는 모두 화물사업을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방식의 매각에 고용 불안 등의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일반노조는 EU집행위 측에 반대 서명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도 성명을 내고 "대한항공 독점강화, 아시아나항공 해체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오늘 결정으로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11대가 사라지고, 유럽 핵심 노선 슬롯이 반납될 것"이라며 "항공산업의 핵심 자산이 내팽개쳐지는데 산업은행은 오히려 합병을 압박하고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 독점강화를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화물사업 매각으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이 위태로워졌다고도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를 의식한 듯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부문 매각과 관련해 고용승계 및 유지를 조건으로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양사 간 자금지원 합의 체결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에 유동성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 어려움도 다소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이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냈다.
산은 측은 "이사회 결정에 따라 EU 경쟁당국에 시정방안을 제출한 이후부터는 경쟁당국보다는 양사의 이행 노력에 심사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며 "산은도 조속한 심사 종결을 위해 양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